요미우리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 스가노 도모유키의 1년 공백과 지명을 거부하고 요미우리에 입단한 선수들의 계보

2011년 10월 27일 - 요미우리가 공언한 1순위 지명을 닛폰햄이 추첨으로 가져가다

2011년 10월 27일 열린 제47회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는 도카이 대학 투수 스가노 도모유키를 1순위로 입찰했다. 스가노는 도요 대학의 후지오카 다카히로, 메이지 대학의 노무라 유스케와 함께 '대학 BIG3'로 불렸고, 할아버지 하라 미쓰구는 도카이 대학 계열 학교 야구부의 총감독, 외삼촌 하라 다쓰노리는 당시 요미우리의 감독이었다. 이러한 관계로 요미우리는 일찍부터 1순위 지명을 공언했고, 전년도의 사와무라 히로카즈처럼 단독 지명이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회의 당일 닛칸스포츠는 '경합 없음'이라는 자신감을 전했고, 스포니치는 '3년 연속 단독 지명'을 제목으로 내걸었다. 10월 17일 자 스포니치는 마음에 둔 구단 이외에 지명되면 미국에서 뛰는 것도 선택지라고 보도해, 요미우리 이외라면 거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닛폰햄도 스가노를 1순위로 입찰했고, 추첨에서 닛폰햄 구단 사장이 교섭권 확정 제비를 뽑았다. 회장이 환호와 박수에 휩싸인 모습은 아사히신문 니시무라 긴야의 기사과 Number Web 고세키 준지의 기사가 전하고 있다. 같은 회의에서 후지오카와 다카하시 슈헤이는 각각 3개 구단의 경합 끝에 롯데와 주니치로 갔고, 노무라는 히로시마의 단독 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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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거부와 1년의 공백 - “어릴 때부터의 꿈”

2011년 11월 21일, 스가노는 닛폰햄 입단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재수를 택했다. 그의 코멘트는 “닛폰햄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제가 어릴 때부터 품어 온 꿈, 그것이 더 강했다는 것입니다”였다. 2012년 1월 말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애리조나주의 훈련 시설에 머물렀고, 3월 31일 닛폰햄이 영입 포기를 발표했다.

공백의 1년 동안 스가노는 도카이 대학의 졸업 연기 제도를 이용해 취업 유급 형태로 대학에 남았다. 규정상 대외 경기에 나설 수 없어 야구부에서의 불펜 투구와 청백전, 시트 배팅에만 등판했고, 실전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스가노 본인은 고교야구와 프로 경기를 관전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2012년 10월 25일 - 다른 구단의 입찰 없이 요미우리 단독 1순위

2012년 10월 25일 제48회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는 스가노를 1순위로 지명했다. 다른 구단의 1순위 입찰은 없었고 단독 지명이었다. 전년도에 스가노를 뽑았던 닛폰햄은 미국 진출 의사를 밝혔던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의 오타니 쇼헤이를 지명하겠다고 명언했고(마이니치신문 2012년 10월 24일 석간), 단독 1순위로 지명해 입단으로 이끌었다.

회의 후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도카이 대학을 찾았고, 스가노는 등번호 19와 이름이 새겨진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다. 11월 21일 가계약 조건은 계약금 1억 엔과 옵션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모두 추정)으로 보도되었다.

계보 - 다른 구단의 지명을 거부하고 요미우리에 입단한 선수들

스가노의 1년은 예외가 아니다. 요미우리 이외 구단의 지명을 거부하고 요미우리에 들어간 선수와, 주니치가 지명을 보류해 요미우리만 지명한 선수를 늘어놓으면 에가와 스구루부터 스가노까지 다음과 같다. 지명 거부 사건의 전체는 지명 거부 사건 기사에서 다룬다.

요미우리 이외 구단의 지명을 거부한 선수와 요미우리만 지명한 선수
선수거부한 지명기다린 기간요미우리 입단
에가와 스구루1973년 한큐 1순위
1977년 크라운라이터 1순위
호세이 대학 진학
1977년 이후 1년 공백
1978년 '공백의 하루' 계약 → 한신의 1순위 지명 → 고바야시 시게루와의 트레이드
모토키 다이스케 (우에노미야 고교)1989년 다이에 1순위1년 (하와이 야구 유학)1990년 1순위 (단독)
우쓰미 데쓰야 (쓰루가케이 고교)2000년 오릭스 1순위3년 (도쿄가스)2003년 자유획득 제도
조노 히사요시 (니혼 대학)2006년 닛폰햄 4라운드
2008년 롯데 2라운드
3년 (Honda)2009년 1순위 (단독)
사와무라 히로카즈 (주오 대학)없음 (주니치가 1순위 지명을 보류)없음2010년 1순위 (단독)
스가노 도모유키 (도카이 대학)2011년 닛폰햄 1순위 (추첨)1년 (졸업 연기)2012년 1순위 (단독)

에가와가 '공백의 하루'부터 고바야시 시게루와의 트레이드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는 에가와 사건 기사와 고바야시 시게루 기사에서 다룬다. 모토키는 요미우리 입단을 원했지만, 1989년 요미우리가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대학 3학년 때 이미 1순위 지명을 약속받았다고 보도된 게이오 대학의 오모리 쓰요시이었다. 다이에의 1순위 지명(노모 히데오 추첨에서 떨어진 뒤의 1순위)을 거부한 모토키는 대학에 가면 4년, 사회인 팀에 가면 3년 동안 지명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재수를 택해 하와이로 1년간 야구 유학을 떠났고, 1990년 11월 24일 요미우리에 지명되었다. 회의 전날에는 쇼리키 도루 구단주가 1순위 지명 약속을 표명했다.

할아버지가 요미우리의 야수였던 우쓰미는 드래프트 직전에 요미우리 이외의 지명은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오릭스의 1순위 지명에는 오기 아키라 감독의 전화를 받고 한때 마음이 기울었지만, 고교 시절 배터리를 이룬 동료가 요미우리에 8순위로 지명되자 최종적으로 거부했고, 도쿄가스로 갔다. 조노는 2006년 닛폰햄의 4라운드 지명을 거부했고, 니혼 대학 감독은 “닛폰햄은 조노가 가장 싫어하는 구단”이라고 말했다(스포니치 2006년 11월 22일 자). 2008년에는 요미우리 이외 구단에 지명되면 프로에 가지 않고 회사에 남을 의사라고 보도되었다(스포니치 2008년 9월 9일 자). 요미우리는 1순위 약속에서 방침을 바꿔 오타 다이시를 1순위로, 조노를 2순위로 돌렸고, 먼저 지명권을 가진 롯데가 2라운드에서 조노를 지명했다. 조노는 12월 3일 거부를 표명했고, 요미우리 스카우트진은 그의 본가를 찾아가 사과했다.

조노는 2009년 단독 1순위로 입단했고, 두 번 거부하고 세 번째 지명으로 입단한 사례는 1982년의 오카모토 히카루 이후 처음이었다. 2010년의 사와무라는 지명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요미우리 입단을 원해 '상사상애'라고 보도되었고(산케이스포츠 2010년 10월 29일 자), 1순위 지명 방침으로 알려졌던 주니치는 입단 거부의 위험을 고려해 당일 지명을 보류했다고 보도되었다(닛칸겐다이 2011년 10월 15일 자). 사와무라 본인은 요미우리가 아니었다면 미국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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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손해를 보았나 - 허비된 지명권과 공백의 시간

표의 6명 중 사와무라를 제외한 5명에 대해서는 지명권을 쓰고도 선수를 얻지 못한 구단이 있다. 1973년의 한큐, 1977년의 크라운라이터, 1989년의 다이에(1순위), 2000년의 오릭스(1순위), 2006년(4라운드)과 2011년(1순위)의 닛폰햄, 2008년의 롯데(2라운드)다.

선수 쪽도 표에서 보듯 1~3년을 치렀다. 반면 요미우리는 기다린 끝에 선수를 얻었다. 보도된 추정액으로 조노와 스가노는 모두 계약금 1억 엔과 옵션 5,000만 엔을 받았고, 이는 당시 신인 계약의 상한에 해당하는 액수였다(모토키는 계약금 9,000만 엔).

요미우리 측의 사전 약속도 거듭 보도되었다. 모토키에게는 회의 전날 쇼리키 도루 구단주가 1순위 약속을 표명했고, 조노에게는 1순위를 약속한 뒤 2순위로 돌리고 사과했으며 2009년 2월 5일에는 1순위 지명 방침을 공표했고, 스가노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1순위 지명을 공언했다. 오모리에게는 대학 3학년 때 1순위를 약속했다고 보도되었고, 그 약속이 모토키를 제외한 이유가 되었다. 회의 전에 구단이 약속을 내비치고, 선수는 그것을 믿고 다른 구단의 지명을 거부한다. 추첨과 지명 순서로 선수를 배분해야 할 드래프트 안에서 요미우리는 이 절차를 여러 차례 밟아 왔다.

2007년 이후 역지명과 자유획득 제도, 희망입단 제도가 폐지되어 대학생과 사회인 선수도 구단을 고를 수 없게 되었다(경위는 역지명 제도 기사). 선수가 구단을 고르는 수단으로 남은 것은 '지명을 거부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고, 조노와 스가노는 이 수단으로 요미우리에 들어갔다. 기다림의 대가는 공백의 시간을 보내는 선수와 지명권을 허비한 구단이 치르며, 기다리게 하는 쪽인 요미우리는 조노와 스가노에게 1순위 지명의 공언과 상한의 계약금으로 기다린 보상을 제시했다.

읽는 법과 한계 -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

스가노 본인이 요미우리 희망을 공언한 발언은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된 것은 요미우리가 일찍부터 1순위 지명을 공언했다는 점, 그리고 스포츠 신문이 단독 지명을 확실시하며 요미우리 이외라면 거부할 가능성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스가노가 거부 이유로 말한 것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라는 말뿐이며, 외삼촌이 감독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 본인의 발언은 확인되지 않는다.

닛폰햄 측 간부나 감독의 발언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싣지 않았다. 2012년 다른 구단이 스가노 지명을 피한 사정도 같은 이유로 쓰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은 단독 지명이었다는 결과뿐이다. 우쓰미가 요미우리 이외는 거부하겠다고 밝힌 건은 출처가 제시되지 않은 기술이고, 계약금과 연봉 액수는 모두 보도된 추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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