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의 감독 인사 - 자기 구단 출신 스타로 한정하는 관행, 현역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감독을 요청한 2015년, 그리고 2005년 호시노 센이치 영입 실패

답 - 1943년 이후의 감독은 모두 요미우리 선수 출신이었다

NPB 연도별 성적표에 실린 1943년 이후의 요미우리 감독(대행 제외)은 나카지마 하루야스부터 모두 요미우리에서 선수로 뛴 인물이다. 다른 구단 출신 감독을 영입하려던 2005년 호시노 센이치와의 접촉은 OB와 주변의 반대 속에 무산됐다. 2015년에는 현역 주력이던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감독을 요청했고, 다카하시는 은퇴하고 취임했다.

요미우리의 감독과 재임 기간
기간감독
1936~1942년후지모토 사다요시
1943년나카지마 하루야스
1944년후지모토 히데오
1946~1947년나카지마 하루야스
1947~1949년미하라 오사무
1950~1960년미즈하라 시게루
1961~1974년가와카미 데쓰하루
1975~1980년나가시마 시게오
1981~1983년후지타 모토시
1984~1988년오 사다하루
1989~1992년후지타 모토시
1993~2001년나가시마 시게오
2002~2003년하라 다쓰노리
2004~2005년호리우치 쓰네오
2006~2015년하라 다쓰노리
2016~2018년다카하시 요시노부
2019~2023년하라 다쓰노리
2024년 취임아베 신노스케

NPB 표에는 1946년과 1947년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 있다(1946년은 후지모토와 나카지마, 1947년은 나카지마와 미하라). 1955~1959년의 미즈하라 시게루는 표에서 다른 이름으로 실려 있다. 표와 본문은 2024년 아베 신노스케의 취임까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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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출신만 쓰는 관행 - 명문 규칙이 아닌 관행의 축적

창단 초기는 사정이 달랐다. 초대 감독 미야케 다이스케와 창단 때의 감독 아사누마는 페넌트레이스에서 실제로 지휘하지 않았다고 하며, 1936년 처음 지휘봉을 잡은 후지모토 사다요시도 프로 선수는 아니었다고 한다. 1943년 나카지마 하루야스부터 그 뒤의 후지모토 히데오, 미하라 오사무, 미즈하라 시게루, 가와카미 데쓰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후지타 모토시, 오 사다하루, 하라 다쓰노리, 호리우치 쓰네오, 다카하시 요시노부, 아베 신노스케는 모두 요미우리에서 선수로 뛰었다. 나가시마가 1980년에 물러난 경위는 1980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해임에서 다룬다.

이 관행은 구단 규칙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1943년부터 2024년 취임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았고, 언론은 이를 '순혈주의'라고 불러 왔다. 외국인 감독의 사례는 NPB 외국인 감독의 계보에 맡긴다.

2015년 다카하시 요시노부 - 퇴임 회견 당일에 정해진 현역 감독

2015년 10월 19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퇴임 회견을 열었다. 시라이시 고지로 구단주는 이 회견에서 새 감독에게는 "인심 일신,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1주일 뒤 취임 회견에서 "그 조건에 맞는 것은 다카하시밖에 없다고 그날 안에 최종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카하시는 이해 선수 겸 코치로 77경기에 나서 타율 .278, 5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성적은 1,819경기, 타율 .291, 321홈런이었다.

10월 23일 오후 다카하시는 와타나베 쓰네오 이사 최고고문과 시라이시 구단주를 만나 감독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보고했다. 두 사람은 모회사인 요미우리신문그룹 본사의 회장과 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구단은 같은 날 수락 사실을 발표하며 다카하시가 2015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적었다.

10월 26일 취임 회견에서 구단은 다카하시를 '요미우리 자이언츠 14번째 감독'이라고 썼다. 시라이시는 "굳이 말하자면 하강 곡선에 있는 팀을 상승 기류에 올려놓을 젊은 지휘관이 다카하시라고 확신한다. 프런트와 신문사가 전력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다카하시는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다"면서도 "현역 선수였던 저에게 감독을 요청한 것은 구단도 상당한 각오가 있어서일 것이다. 저 자신도 각오를 갖고 결단했다. 저는 아직 지도자로서 경험이 없지만, 강한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가시마 시게오 종신 명예감독, 하라 다쓰노리, 오 사다하루 등은 "꼭 해라"고 했고, 마쓰이 히데키는 "정말 좋은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협력할 테니 아무튼 힘내라"고 격려했다. 나가시마는 "자신을 버리고 팀을 위해 훌륭한 결단을 내려 주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등번호는 현역 시절과 같은 24번이다. 40세 취임은 가와카미 데쓰하루(40세), 나가시마 시게오(39세)와 같은 연배로, 2016년 12개 구단 가운데 최연소 감독이었다. 성적은 2016년 2위(71승 69패 3무), 2017년 4위(72승 68패 3무), 2018년 3위(67승 71패 5무)였고, 2019년에는 하라 다쓰노리가 세 번째로 감독에 올랐다. 계약 연수와 임기 도중의 퇴임은 프로야구 감독의 계약은 몇 년이 많은가에서 다룬다.

2005년 호시노 센이치 접촉 - 부진과 시청률이 부른 다른 구단 출신 카드

2004년 요미우리는 리그 3위였지만 TV 중계 평균 시청률은 12.2%(비디오리서치, 간토 지구)로 역대 최저였다. 2005년은 개막 4연패로 시작해 4월 하순에는 최하위로 떨어졌다. 호리우치 쓰네오 감독은 3년 계약의 2년째였다. 당시 구단주 다키하나 다쿠오는 "하나는 팀의 부진이 있었고, 또 하나는 시청률의 침체가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다음 감독에게는 그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고 돌아본다.

2005년 7월 중순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 회장과 구단 상담역을 맡은 닛폰TV의 우지이에 세이이치로 이사회 의장의 식사 자리에서 "호시노는 어떨까"라며 호시노 센이치의 이름이 떠올랐다. 호시노는 2003년을 끝으로 한신 감독에서 물러나 구단주 직속 시니어 디렉터로 한신에 남아 있었다. 외국인 감독까지 검토되던 가운데 나온 안으로, 스포츠호치는 요미우리에서 다른 구단 출신의 '외부인'이 지휘한 적은 없다고 쓴다. 호시노의 감독 경력은 호시노 센이치 투장 전설에 있다.

다키하나는 "와타나베 씨와 우지이에 씨의 발상은 팀이 우승하는 것, 시청률과 관중 동원율을 올리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자체 출신만 쓰는 순혈주의는 와타나베, 우지이에, 자신 세 사람 모두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키하나는 한 달가량 사이에 호시노를 다섯 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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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반대와 단념 - OB의 성명과 협박장

2005년 8월 11일 일부 언론이 호시노를 차기 감독 최유력 후보로 보도하면서 교섭이 드러났다. 히로오카 다쓰로, 가네다 마사이치 등 OB가 석간지 등에서 반대 성명을 냈고, 히로오카는 주간실화(2005년 9월 15일호)에서 "그런 OB를 무시하고 제3자에게 맡기는 것은 회사로 치면 도산과 같다. 그야말로 수치다"라고 말했다. 모리 마사아키는 주간포스트(9월 9일호)에서 감독에게 이기는 능력보다 인기와 화제성이 요구되는 것이냐고 묻고, 프런트 간부가 더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감독이 되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키하라 히로미는 아사히게이노(9월 8일호)에서 자체 출신 OB 중에서 감독을 골라 달라고 썼고, 하리모토 이사오는 스포츠닛폰(9월 12일 자)에서 자체 출신 감독으로 조직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호시노의 홈페이지에는 팬들의 반대 글이 올라왔고 협박장도 왔다. 9월 1일 호시노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다키하나에게 감독 문제는 어렵다, 협박장까지 온다, 때를 봐서 요미우리에는 가지 않겠다고 밝히고 싶다고 전하며 단념했다. 9월 10일에는 오사카 시내에서 회견을 열어 한신에 남겠다고 표명하고 "팬들에게서 '남아 달라'는 목소리가 많다. 나 나름대로 답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회견 전날 밤에는 호치 기자에게 전화로 "좋은 꿈 꾸게 해 줬어…"라고 했다. 다음 감독으로는 하라 다쓰노리가 복귀했다.

단념의 이유를 OB의 반대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호시노 자신이 입에 올린 것은 협박장과 잔류를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였고, 9월 10일에는 시니어 디렉터로 한신에 남겠다고 표명했다. 그럼에도 Number Web 기사는 이 소동을 계기로 '감독은 자체 출신이어야 한다'는 가치관이 OB와 팬들 사이에서 분명해졌다고 쓴다.

견해 - 규칙 없는 관행이 감독 후보를 좁히고 있다

요미우리의 '자체 출신만'은 명문 규칙이 아니라 관행이다. 규칙이라면 개정을 논의할 수 있지만, 누가 정했는지 분명하지 않은 관행에는 바꿀 절차조차 없다. 후보를 자기 구단 OB로 한정하면 감독 인재의 폭은 그만큼 좁아진다.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를 맡겨 온 구단과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2015년 인사는 '인심 일신'이라는 구단의 사정이 앞섰다. 퇴임 회견 당일에 다음 감독을 정하고, 지도자 경험이 아직 적은 현역 주력에게 감독을 요청했고, 다카하시는 은퇴하고 취임했다. 결과는 3년간 2위, 4위, 3위였고 2019년에는 하라가 돌아왔다. 후보를 OB로 한정한 데다 결정을 서두르면서,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게 한 뒤 맡기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 따져야 할 것은 다카하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구단의 인사 방식이다.

2005년에는 우승과 시청률을 원한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자체 출신을 원하는 OB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부딪혔고, OB 쪽이 이겼다. 2006~2024년에 취임한 감독인 하라, 다카하시, 하라, 아베는 모두 자체 출신 스타다. 수뇌부의 안조차 통과되지 못한 이상, 관행을 바꾸려면 구단이 감독을 어디에서 고르는지를 방침으로 명문화하는 수밖에 없다.

읽는 법과 한계

이 기사의 사실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발표문 2건, NPB 연도별 성적표와 다카하시의 개인 성적, 다키하나 다쿠오 등의 증언을 실은 스포츠호치 기사 2건, OB 발언의 매체와 호 날짜를 밝힌 Number Web 기사에 근거한다. OB 발언의 원래 지면은 확인하지 않았다. 미야케 다이스케, 아사누마, 후지모토 사다요시의 경력은 2차 자료에 따른 것이어서 '~라고 한다'는 형태로 썼다.

2018년 다카하시의 퇴임 경위는 1차 자료를 확인하지 않아 쓰지 않았다. 호시노가 거절한 이유는 본인의 말과 보도 범위에 한정했고, 와타나베나 우지이에의 인물평과 감독 개인의 용병술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았다. 묻는 것은 감독을 누구 가운데서 고르느냐는 구단의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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