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장의 탄생 - 투수 호시노 센이치
호시노 센이치는 1969년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통산 146승 121패, 방어율 3.60을 기록했으며, 요미우리 연패 시대에 요미우리전 높은 승률로 '자이언트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투수 시절의 투지 넘치는 모습은 훗날 '투장'으로서의 감독 스타일을 예고했다.
3개 팀에서의 리그 우승
호시노는 주니치(1988년, 1999년), 한신(2003년), 라쿠텐(2013년)에서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이는 극히 드문 업적이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렬한 인격의 힘으로 약팀을 강팀으로 변모시키는 능력이었다. 선수들에게 투지를 요구하면서도 신뢰하는 선수에게는 전폭적인 믿음을 보냈다. 심판과의 격렬한 항의로 인한 퇴장 횟수는 NPB 역대 최다 수준이었다.
2003년 한신 우승과 2013년 라쿠텐 일본 제일
호시노는 2003년 한신의 18년 만의 우승 가뭄을 끝냈으며, 가네모토 도모아키와 이마오카 마코토를 중심으로 '암흑시대'의 타이거스를 변모시켰다. 2013년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호쿠를 위해'라는 구호로 라쿠텐을 첫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나카 마사히로의 24승 0패라는 경이적인 성적이 7차전까지 간 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꺾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피해 지역에 큰 용기를 주었다.
유산
호시노는 2018년 1월 4일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췌장암 투병 사실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통산 1,181승 1,043패라는 기록은 그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다. 세 개의 서로 다른 부진한 구단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2017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투장'의 이름을 NPB 역사에 영원히 새겼다.
호시노류 선수 기용과 보강 철학
호시노는 트레이드와 FA 보강을 적극 활용했다. 1996년 비시즌 야마자키 다케시의 주니치 이적, 2002년 비시즌 가네모토 도모아키와 이라부 히데키의 한신 입단은 모두 호시노의 강한 요청으로 성사됐다. 그의 보강 방침은 즉전력으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었으며 육성에 시간을 들이는 방식과 대조적이었다. 레귤러를 고정해 시즌 내내 일관되게 기용하는 스타일은 선수에게 자신감을 주고 팀 안정감으로 이어졌다. 투수 기용에서는 선발 완투를 중시하며 에이스에게 많은 등판 기회를 부여했다.
철권 제재와 시대의 변화
호시노는 실수한 선수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철권 제재'로 알려져 있었다. 1980~1990년대 일본 야구계에서는 이런 방식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고, 호시노 본인도 '사랑의 채찍'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에서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비판이 증가했다. 2013년 라쿠텐 감독 시절에는 손을 대는 장면이 목격되지 않았으며, 시대에 맞춰 지도 방식을 바꿨다고 주변은 증언한다. 호시노의 공적과 폭력적 지도를 분리할 수 없는 논쟁은 일본 스포츠계의 지도자상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과 국제 무대의 도전
호시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NPB 올스타급 선수를 보유하고도 준결승에서 한국에, 동메달 결정전에서 미국에 패하며 4위로 마감했다. 금메달 기대가 컸던 만큼 결과는 큰 비판을 받았다. 투수 기용과 대타 전략에 대한 의문이 쏟아졌으며, 단기전에서의 호시노 지휘의 한계가 지적됐다. 장기 페넌트레이스에서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과 토너먼트 방식의 국제대회 사이의 적합성 차이가 드러난 대회였다. 이 경험이 2013년 라쿠텐에서의 지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본인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