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전 9회 말
1979년 11월 4일, 오사카 구장. 일본시리즈는 최종 7차전까지 이어졌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4-3으로 1점 리드한 채 9회 말을 맞이했다. 상대는 '이테마에 타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긴테쓰 버팔로즈. 난카이에서 히로시마로 트레이드된 후 마무리 투수로 변신에 성공한 에나쓰 유타카가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401탈삼진 기록을 보유한 전 한신 에이스 좌완이 커리어를 정의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무사 만루
긴테쓰는 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한 방이면 시리즈가 끝나는 상황. 오사카 구장은 긴테쓰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고 히로시마 더그아웃은 침묵에 빠졌다. 이어진 21구는 NPB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구 시퀀스가 됐다. 에나쓰는 동요 없이 체계적으로 코너를 공략했다. 커브로 첫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두렵지 않았다. 여기서 막으면 전설이 된다고 생각했다.'
스퀴즈를 간파한 전설의 한 구
1사 만루에서 긴테쓰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스퀴즈 번트 사인을 냈다. 에나쓰는 3루 주자의 비정상적으로 큰 리드와 타자의 미묘한 자세 변화에서 이를 간파했다. 포수 미즈누마 시로에게 눈짓을 보내고 고의 빗나간 공을 던졌다. 타자는 번트 자세를 취했지만 헛스윙했고, 홈으로 돌진한 주자는 태그아웃됐다. 2사로 전환된 후 에나쓰는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히로시마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
21구가 남긴 유산
이 21구는 NHK 중계와 작가 야마기와 준지의 논픽션 명작 '에나쓰의 21구'(1981년)를 통해 불멸의 기록이 됐다. 이 작품은 증인 증언을 통해 한 구 한 구를 재구성하며 스포츠 저널리즘의 이정표가 됐다. 에나쓰 본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 21구가 없었다면 내 야구 인생은 이야기할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선발 투수로서 시즌 탈삼진 기록을 보유하면서도 마무리 전향 후 일본시리즈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 투수의 궤적은 야구 선수 커리어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