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B의 인종·국적 차별 문제 - 재일 코리안 선수들이 걸어온 가시밭길

강요된 통명 - 본명을 숨기고 뛴 선수들

NPB 역사에서 많은 재일 코리안 선수들이 일본식 이름(통명)으로 뛰었다. 한국·조선 이름을 사용하면 차별과 야유의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하거나, 구단 측의 요청에 의해 본명을 숨기고 뛸 수밖에 없었다. 하리모토 이사오는 재일한국인으로 알려진 NPB 통산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이지만, 현역 시절에는 일본식 성 '하리모토'로 통했다. 가네다 마사이치도 재일한국인으로 통산 400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지만, 그의 출신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일은 오랫동안 없었다. 본명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선수들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외국인 선수 등록 제한과 국적의 벽

재일 코리안 선수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한국·조선 국적을 보유한 경우 NPB의 외국인 선수 등록 제한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외국인 등록은 1군 4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용병 외국인과 같은 틀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은 재일 코리안 선수에게 큰 핸디캡이었다. 이 문제는 1990년대에 활발히 논의되었고, NPB는 재일 외국인에 대한 특례 조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제도 변천 속에서 재일 코리안 선수가 불리한 대우를 받은 역사는 야구계의 차별 구조를 상징한다.

관중의 차별적 야유

재일 코리안임이 알려진 선수에 대해 관중으로부터 차별적 야유가 날아오는 일이 있었다. '조선으로 돌아가라' 등의 모욕적인 말이 구장에서 발해진 사례를 여러 전 선수가 증언하고 있다. 구단이나 NPB가 이러한 야유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취한 경우는 드물었고, 선수 개인이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2010년대 이후 차별적 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구장 내 차별 행위에 대한 퇴장 조치도 도입되었지만, 근절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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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갈등과 자긍심

재일 코리안 선수들은 일본 사회에서 살면서 한국·조선의 뿌리를 가진 복잡한 정체성 속에서 뛰어왔다. 본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긍심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신의 출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물음에 계속 마주해왔다. 2000년대 이후 재일 코리안임을 공개하고 본명으로 뛰는 선수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한국 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재일 선수도 있어 정체성 표현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차별의 역사가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며, 재일 코리안 선수가 안심하고 본명으로 뛸 수 있는 환경 조성은 NPB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구단 경영과 재일 코리안의 관계

NPB 역사에는 재일 코리안 실업가가 구단 경영에 관여한 사례가 있다. 롯데그룹 창업자 시게미쓰 다케오 (신격호) 는 재일한국인으로, 롯데 오리온즈 (이후 롯데 마린즈) 의 구단주로서 오랜 기간 구단을 지탱했다. 선수로서뿐 아니라 경영 측에서도 재일 코리안이 야구계에 공헌해왔으나, 그 사실이 공적으로 평가받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구단 경영자의 출신이 잘 언급되지 않는 풍조는 재일 코리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반영이기도 했다. 경영 측면의 공헌을 정당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도 야구계의 역사 인식을 심화하는 데 중요하다.

미디어 보도와 재일 코리안 선수의 취급

스포츠 미디어에서 재일 코리안 선수의 출신이 어떻게 보도되었는지는 시대에 따라 변천이 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선수의 출신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보도에서는 통명만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후 일부 선수가 스스로 출신을 공표하는 움직임이 생겼으나,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도 자세는 재일 코리안 선수의 가시성에 직결되며, 침묵은 차별 구조 유지에 가담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일 관계와 야구계에 미친 영향

일본과 한국의 외교 관계 변동은 재일 코리안 선수를 둘러싼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한일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구장에서의 차별적 야유가 증가했다는 증언이 있다. 반면 2002년 한일 공동 개최 월드컵 시기에는 스포츠를 통한 우호 분위기가 퍼지며 재일 선수가 양국의 가교로 주목받는 장면도 있었다. 야구계는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며, 외교 관계가 선수의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구조는 재일 코리안 선수 고유의 어려움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