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러브 8회 수상의 명수
쓰지 하쓰히코는 1984년 드래프트 2순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루수로 14시즌을 뛰며 골든글러브상을 8회 수상했다. 넓은 수비 범위와 정확한 송구로 NPB 최고의 수비형 2루수로 평가받았다. 타격에서는 통산 타율 .282, 1,523안타를 기록하며 번트와 진루타에 능한 전형적인 2번 타자로 활약했다.
세이부 왕조의 수비 핵심
쓰지는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세이부의 7년 연속 우승 모두에 공헌했다. 기요하라, 아키야마, 데스트라데 등 강타자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쓰지는 수비와 기본기로 팀을 지탱했다. 이시게 히로아키와의 이유간 콤비는 철벽으로 평가받았다. 199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타율 .381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를 수상했는데, 수비 전문가로서는 드문 영예였다.
말년과 은퇴
쓰지는 1997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하여 2시즌을 뛴 후 1998년 은퇴했다. 통산 타율 .282, 1,523안타, 홈런 60개라는 기록은 파워가 아닌 수비와 기본기로 승부한 선수임을 보여준다.
감독으로서 세이부 2연패 달성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세이부 감독을 맡은 쓰지는 유격수 겐다 소스케를 중심으로 한 수비 우선 철학으로 2018-2019년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두 차례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에 패했지만, 선수와 감독 모두로서의 이중 유산은 쓰지를 라이온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쓰지 하쓰히코의 주루 기술과 야구 두뇌
쓰지 하쓰히코의 진가는 수비뿐 아니라 주루에서도 빛났다. 통산 165 도루는 빠른 발의 증거이지만, 그의 주루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한 각력이 아닌 관찰력과 판단력에 기반한 지적 주루였다는 점에 있다. 투수의 버릇을 읽고, 포수의 송구 패턴을 기억하며, 한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다음 베이스를 빼앗았다. 모리 미치아키 감독이 요구한 '생각하는 야구'를 주루에서도 구현하며, 상대 배터리에 끊임없이 압박을 가했다. 진루타와 희생 번트를 포함하여, 주자로서 팀 득점 효율을 높이는 능력은 단순한 도루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가치였다. 쓰지의 주루는 '달리는 행위'를 '사고하는 행위'로 승화시킨 것이며, 세이부 황금시대의 치밀한 야구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지성이 훗날 지도자로서의 커리어에도 이어졌다.
캡틴십과 팀 통솔력
쓰지 하쓰히코는 선수로서의 실력에 더해, 캡틴으로서의 리더십으로도 세이부를 이끌었다. 화려한 카리스마가 아닌, 매일의 훈련 자세와 경기 중 동료에 대한 목소리, 젊은 선수에 대한 조언 등 꾸준한 행동으로 팀의 모범을 보이는 유형의 주장이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 아키야마 고지 같은 스타 선수가 포진한 로스터에서 쓰지는 그라운드 위 감독의 대변인으로 기능하며 팀의 규율을 유지했다. 모리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 역할도 수행하여 전술 지시가 정확히 전달되고 실행되도록 했다. 쓰지의 통솔력은 숫자로 나타나기 어렵지만, 세이부가 장기간 우승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이다. 뛰어난 선수가 모여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쓰지는 그 하나됨을 만들어낸 중심인물이자, 팀 스포츠에서 캡틴의 이상향을 구현한 존재였다.
NPB 2루수 상(像)에 미친 영향
쓰지 하쓰히코가 보여준 2루수의 모습은 이후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비력과 지적 주루, 소기에 능한 모습으로 타선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그의 플레이는 2루수에게 요구되는 이상향을 정의했다. 쓰지 이전에도 뛰어난 수비의 2루수가 있었지만, 골든글러브 8회라는 압도적 수상 횟수와 우승팀의 중심에 계속 있었던 실적이 그의 별격을 증명한다. 세이부에서 쓰지의 가르침을 받은 후배들은 물론, 타 구단의 젊은 2루수에게도 쓰지는 본보기였다. 타격 편중으로 수비 포지션별 역할 의식이 옅어지기 쉬운 시대에, 쓰지의 존재는 '2루수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지표로 남아 있다. 화려함보다 확실함, 개인 숫자보다 승리에 대한 공헌. 쓰지 하쓰히코가 구현한 이 가치관은 일본 야구에서 장인형 선수의 계보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