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창설 - 한큐 전철이 시작한 직업야구
한큐 브레이브스는 한큐 전철 주식회사가 NPB 창설기인 1936년에 만든 직업야구 구단이다. 당시 정식 명칭은 '오사카 한큐 야구 협회'였고, 이후 한큐 브레이브스로 개칭됐다. 철도 회사가 구단을 소유하는 모델은 한신 타이거스를 보유한 한신 전철과 함께 간사이의 대표 사례로, 간사이 지역의 야구 문화를 견인하는 존재가 됐다. 본거지는 오사카 니시노미야에 있었고, 한큐 노선 관객이 구장에 다니는 구조가 정착했다. 창설기의 한큐는 간사이의 사철계 구단으로 한신 타이거스와 전통적 라이벌 관계를 쌓았으며, 간사이 더비는 흥행적으로도 중요한 카드였다.
1970년대 황금기 - 우에다 도시하루와 3연패 일본 시리즈
한큐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는 1970년대다.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이 이끈 한큐는 1975년부터 1977년에 걸쳐 일본 시리즈 3연패라는 위업을 이뤘다. 이 황금기를 지탱한 것은 에이스 야마다 히사시, 세계 도루왕으로 불린 후쿠모토 유타카, 강타자 가토 히데지, 나가이케 도쿠지, 포수 나카자와 신지 등의 스타 선수들이다. 야마다 히사시는 잠수함 투법으로 통산 284승을 거뒀고, 후쿠모토 유타카는 통산 1065 도루라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개인 타이틀뿐 아니라 팀의 승리에 기여해 한큐를 NPB의 정점으로 이끌었다. 1970년대 한큐는 강력한 투수진, 기동력 있는 공격, 견실한 수비를 겸비한 완성도 높은 팀이었다. 요미우리를 꺾고 일본 1을 차지한 3년 연속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리그의 존재감을 높인 역사적 사건이다.
1980년대의 쇠퇴 - 관중 동원의 침체
1970년대 황금기를 거친 뒤 한큐는 1980년대에 들어 점차 성적이 하락했다. 야마다 히사시, 후쿠모토 유타카 같은 주력 선수의 고령화, 젊은 선수 육성의 정체, 신흥 팀의 부상 등이 겹쳐 한큐는 우승 다툼에서 멀어졌다. 더 심각했던 것은 관중 동원의 침체였다. 당시 퍼시픽리그 전체가 관중 동원에 고전한 시기였고, 한큐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본거지 니시노미야 구장의 관중석은 종종 한산했고, 구단 경영은 어려움을 더해 갔다. 모회사 한큐 전철은 본업의 철도업에 집중하는 방침을 내놓고, 비채산 사업에서의 철수를 검토하게 됐다. 야구 구단의 경영은 당시 한큐 전철에게 점차 짐이 됐다.
1988년 매각 - 오리엔트 리스로의 양도
1988년 10월 한큐 전철은 한큐 브레이브스를 오리엔트 리스(현 오릭스)에 매각하는 것을 발표했다. 양도액은 당시 보도로 약 60억 엔으로 알려져 NPB의 매각 사상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양도 발표는 간사이를 본거지로 하는 전통적 퍼시픽리그 구단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해, 한큐 팬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이었다. 양도 후 구단명은 '오릭스 브레이브스'가 됐고, 그 후 다시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바뀌었다. 본거지도 니시노미야에서 고베로 이전되었고, 한큐 시대의 전통은 점차 옅어져 갔다. 한큐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은 52년의 역사에 막을 내렸고, 그 유전자는 오릭스로 이어졌다.
현재 오릭스 버펄로스로의 계승
한큐 브레이브스의 유산은 현재의 오릭스 버펄로스에 계승되고 있다. 2004년 야구계 재편에서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와 합병한 오릭스 블루웨이브는 현재의 '오릭스 버펄로스'가 됐다. 본거지는 교세라 돔 오사카(오사카부)와 GREEN STADIUM 고베(효고현)의 두 본거지 체제로, 한큐 시대의 간사이 기반은 형태를 바꿔가며 유지되고 있다. 야마다 히사시의 17번과 후쿠모토 유타카의 7번은 공식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한큐 시대의 위업을 상징하는 등번호로 존중받고 있다 (후쿠모토의 7번은 2013~2016년 이토이 요시오가 착용한 적이 있다). 한큐 시대의 위업은 지금도 구단의 역사로 전해지고 있다. 오릭스는 2021년부터 2023년에 걸쳐 3년 연속 퍼시픽리그 우승을 달성해, 한큐 시대 이래의 연패를 이뤘다. 이는 한큐의 전통을 잇는 상징적 성과로 오랜 팬에게 환영받았다.
사라진 구단의 유산 - NPB 사에서의 의의
한큐 브레이브스의 소멸은 NPB 퍼시픽리그 사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간사이를 대표하는 전통적 퍼시픽리그 구단의 소멸은 리그 전체의 균형에도 영향을 줬다. 한신 타이거스와 한큐 브레이브스라는 간사이 양대 구단의 대립 구도가 무너지고, 간사이의 야구 문화는 일극집중 경향을 강화했다. 한편 사라진 구단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야마다 히사시, 후쿠모토 유타카, 가토 히데지 같은 한큐의 스타 선수들의 이름은 NPB의 역사책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그들의 기록은 한큐라는 구단이 분명히 존재했고 황금기를 쌓았다는 증거다. 사라진 구단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하는 것은 NPB의 문화적 두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작업이다. 한큐 브레이브스의 52년은 사라졌기에 더욱 그 존재의 무게가 시간이 지나며 새롭게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