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시모노세키 탄생 - 다이요 수산의 고래잡이 선단에서
다이요 웨일스는 1949년의 양 리그 분립을 계기로 1950년에 시모노세키를 본거지로 탄생했다. 모회사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를 거점으로 하는 어업 회사 '다이요 수산'(현 마루하 니치로)으로, 회사 사업인 고래잡이에서 따 팀명을 '웨일스(고래)'로 했다. 팀명에 고래를 내건 구단은 당시로서도 드물어 어업 회사의 사풍을 강하게 반영했다. 본거지 시모노세키 구장은 규모가 작고 관중 동원에도 한계가 있어 창설 당초부터 본거지 이전 논의가 있었다. 시모노세키 시대의 다이요는 성적도 부진해 리그 최하위나 하위에서 침체했다. 그러나 '웨일스'라는 팀명과 어업 회사라는 독특한 모회사의 조합은 후년에 걸쳐 구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이 되었다.
1953년 오사카 이전 -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와의 통합
1953년 다이요 웨일스는 본거지를 오사카로 옮기고, 같은 해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해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가 됐다. 쇼치쿠 로빈스는 영화 회사 쇼치쿠를 모회사로 하는 구단으로, 경영난에서 다이요와의 합병에 이르렀다. 합병 후 본거지는 오사카 구장으로, 간사이를 거점으로 하는 센트럴리그 구단이 됐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 관중 동원에서도 고전이 이어졌다. 1955년 다이요 웨일스는 다시 본거지를 이전해 가와사키로 옮겼다. 단기간에 시모노세키→오사카→가와사키로 본거지를 바꾼 배경에는 어업 회사라는 모회사의 사업 전개 방침과 각지에서의 관중 동원의 어려움이 있었다. NPB 안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본거지를 이전한 구단은 드물어, 다이요 웨일스의 '표류' 체질은 이 시기에 정착했다.
1955년부터 1977년의 가와사키 시대 - 22년의 안정기
1955년부터 1977년까지 22년간 다이요 웨일스는 가와사키를 본거지로 했다. 가와사키 구장은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있었고, 도쿄·가나가와를 상권으로 하는 수도권의 센트럴리그 구단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은 다이요 웨일스 중에서 가장 길게 이어진 시기로, 구단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60년에 미하라 오사무 감독 아래에서 일본 1을 달성한 것도 가와사키 시대의 일이다. 미하라 감독은 '마술사'라 불린 명장으로 다이요에 유일한 일본 1을 안겼다. 그러나 그 후 다이요는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우승 다툼에서 멀어졌다. 가와사키 구장은 다른 구단의 본거지에 비해 시설이 낡았고, 관중 동원에서도 고전이 이어졌다. 22년의 가와사키 시대는 다이요에게 영광과 침체가 교차하는 복잡한 시기였다.
1978년 요코하마 이전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1978년 다이요 웨일스는 본거지를 요코하마로 옮기고 팀명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바꿨다.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새 본거지가 되어, 요코하마시와 가나가와현을 중심으로 하는 프랜차이즈가 정식으로 확립됐다. 요코하마 이전은 가와사키 구장의 노후화와 관중 동원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한 판단이었다. 요코하마 스타디움은 당시로서는 최신 구장으로 관중 동원의 개선이 기대됐다. 요코하마 시대에 들어선 뒤에도 다이요는 여전히 강호라 부를 수 없는 성적이었지만, 지역과의 연결은 점차 강해져 요코하마의 팬층이 형성됐다. 야마시타 다이스케, 다시로 도미오, 야시키 가나메, 다카기 유타카 같은 스타 선수가 활약하며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의 시대를 수놓았다. 1990년대에 들어설 무렵에는 요코하마라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로의 이행이 완료되어 구단의 정체성도 요코하마 중심으로 재구축되어 갔다.
1992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의 개명
1992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는 팀명에서 '웨일스'를 빼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개명했다. 이는 다이요 수산(당시 마루하)이 구단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침을 내놓은 것과 요코하마라는 지역에 밀착한 브랜딩을 우선하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웨일스'라는 팀명은 42년의 역사를 거쳐 사라지고, 새로운 '베이스타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개명에서 6년 뒤인 199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곤도 히로시 감독 아래에서 38년 만의 일본 1을 달성했다. 머신건 타선이라 불린 강력한 타선, 사사키 가즈히로의 다이마진 마무리가 활약한 황금기였다. 그러나 그 후 베이스타스는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 긴 암흑기가 이어졌다.
DeNA로의 양도와 현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11년 TBS가 보유하고 있던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IT 기업 DeNA에 양도됐다. 팀명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되어 현대로 이어지는 구단의 형태가 확립됐다. DeNA는 IT 계 기업다운 디지털 마케팅을 구사해 관중 동원 수를 대폭 증가시켰다. 2024년에는 26년 만의 일본 1을 달성해 요코하마의 팬에게 환희를 안겼다. 다이요 웨일스의 50년사(1950-1992년 개명 전까지 포함하면 42년사)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라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다. 시모노세키, 오사카, 가와사키, 요코하마로 본거지를 바꾸고 어업 회사, IT 기업으로 모회사를 바꾸면서도 구단은 존속하고 있다. NPB의 역사에서 이렇게 이동과 변화를 경험한 구단은 드물고, 다이요 웨일스의 항적은 구단 존속의 유연성과 어려움의 양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