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리그 소멸 위기의 진상 - 2004년 구계 재편의 무대 뒤

긴테쓰 소멸의 충격

2004년 6월,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소식이 전해지며 구계에 충격이 퍼졌다. 긴테쓰는 연간 수십억 엔의 적자를 안고 있었고, 모회사 긴키 일본 철도도 경영 합리화 압박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이 합병 뒤에는 단순한 경영 문제를 넘어선 의도가 숨어 있었다. 요미우리의 와타나베 쓰네오를 중심으로, 퍼시픽리그에서 한 조를 더 합병시켜 10개 구단으로 만들고 최종적으로 단일 리그제로 이행하려는 구상이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퍼시픽리그의 비인기와 적자 체질은 단일 리그제 추진파에게 좋은 구실이 되었다.

선수회의 반란 - 후루타의 결단

일본프로야구선수회는 구단 합병과 단일 리그제 이행에 강하게 반발했다. 회장 후루타 아쓰야는 '선수의 고용을 지키자'와 '팬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소하며 구단주 측과의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구단주 측은 선수회의 요구를 대부분 무시하고 합병을 기정사실로 밀어붙였다. 협상이 결렬된 결과, 2004년 9월 18-19일 NPB 역사상 최초의 파업이 단행되었다. 이틀간 12경기가 취소되는 프로야구 역사상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파업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여론은 선수회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라쿠텐 참가 - 위기 회피와 새로운 시작

파업 후 협상에서 구단주 측은 신규 구단 참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IT 기업 라쿠텐과 라이브도어가 신규 참가를 신청했고, 심사 결과 라쿠텐이 2005년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참가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12구단 2리그제가 유지되어 퍼시픽리그 소멸 위기는 회피되었다. 그러나 긴테쓰 버팔로즈는 소멸했고,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구단이 구단주의 경영 판단으로 사라졌다. 긴테쓰 팬들의 상실감은 헤아릴 수 없었으며, 구단 소멸이 팬에게 주는 상처의 깊이를 구계에 직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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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 후의 퍼시픽리그 - 부활과 교훈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위기를 겪은 퍼시픽리그는 이후 크게 발전했다. 퍼시픽리그 6개 구단이 공동 설립한 '퍼시픽리그 마케팅'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퍼시픽리그 TV'를 출범시켜 팬층 확대에 성공했다. 소프트뱅크, 닛폰햄, 라쿠텐 등의 구단은 지역 밀착형 경영으로 관중 동원을 늘렸다. 한때 '비인기 리그'로 멸시받던 퍼시픽리그가 센트럴리그를 능가하는 실력과 인기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성공이 2004년의 위기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구계 거버넌스의 취약성을 말해준다. 위기에 몰리지 않으면 개혁할 수 없는 체질이야말로 NPB의 근본적 과제이다.

라이브도어 문제 - 구계가 거부한 또 하나의 신규 참가

라쿠텐과 동시에 신규 참가를 신청한 라이브도어는 심사 결과 불승인되었다. 호리에 다카후미 사장이 이끄는 라이브도어는 센다이를 연고지로 내세웠으나, 구계 측은 '경영의 안정성'을 이유로 라쿠텐을 선택했다. 당시 라이브도어의 매출 규모는 약 300억 엔으로 결코 작지 않았으나, 기존 오너진 사이에는 IT 신흥기업에 대한 경계감이 뿌리 깊었다. 이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은 후에 비판을 받았고, 2005년 이후 NPB는 참가 요건의 명확화에 나서게 되었다. 호리에는 낙선 후에도 구계 참가 의욕을 보였으나, 2006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되면서 그 구상은 좌절되었다.

TV 중계권의 구조적 문제

2004년 위기의 근저에는 TV 중계권을 둘러싼 수익 격차가 있었다. 센트럴 리그는 요미우리를 필두로 지상파 중계권으로 풍요로웠으며, 각 구단은 연간 수십억 엔의 중계권 수입을 얻고 있었다. 반면 퍼시픽 리그의 중계권 수입은 센트럴 리그의 수분의 일에 그쳐 구단 경영을 압박했다. 이 수익 구조가 퍼시픽 리그 구단의 만성 적자를 낳아 합병·축소론의 온상이 되었다. 재편 후 퍼시픽 리그는 인터넷 배신을 축으로 중계권의 자주 관리로 전환했다. 퍼시픽 리그 마케팅이 전 경기의 온라인 스트리밍을 맡아 지상파에 의존하지 않는 수익 모델을 구축했다. TV 중계에 의지할 수 없었던 약점이 결과적으로 디지털 전략의 선행이라는 강점으로 전환된 사례이다.

소멸 구단의 팬이 남긴 것

긴테쓰 버팔로즈의 소멸은 구단과 팬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긴테쓰의 최종 경기가 된 2004년 9월 26일 오사카돔에는 만원의 팬이 모여 선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구단 소멸 후 일부 전 긴테쓰 팬은 오릭스로 옮겼으나, 많은 이들은 구장에서 발길이 멀어졌다. 그중 일부는 2005년에 NPB 최초의 시민 구단 구상을 제창하며 구단의 공공성을 호소했다. 또한 긴테쓰 OB회는 매년 추도 이벤트를 이어가며 이테마에 타선의 기억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구단은 기업의 것인가, 지역의 것인가. 이 물음은 2004년 이후 구계 개혁에서 지역 밀착형 경영이 중시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라쿠텐과 닛폰햄의 지방 이전 성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