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의 탄생과 일본의 첫 참가
2006년에 시작된 WBC는 야구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 대회로 큰 주목을 받았다. MLB 주도로 창설된 이 대회는 각국의 최정상급 선수들이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무대로 구상되었다. 오 사다하루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NPB와 MLB 양쪽에서 정예 선수를 모아 첫 대회에 임했다. 대회 전 예상에서는 MLB 선수를 다수 보유한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이 우승 후보로 꼽혔고, 일본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압도적인 투구와 이치로의 결정적인 타격을 앞세워 일본은 예상을 뒤엎는 돌풍을 일으켰다. 준결승 한국전에서는 이전 두 차례 패배를 설욕했고, 결승에서 쿠바를 10-6으로 꺾으며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우승은 NPB의 국제적 평판을 완전히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2연패 달성과 대회의 정착
2009년 제2회 대회에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결승전의 극적인 전개였다. 한국과의 결승전은 연장 10회까지 이어졌고, 이치로가 결승타를 날리며 극적인 결말을 장식했다. 이 안타는 일본 야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2연패 달성은 첫 우승이 요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세계에 일본 야구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3년 제3회 대회 준결승에서 푸에르토리코에, 2017년 제4회 대회 준결승에서 미국에 패하며 3연패에는 실패했다. 이 두 차례의 준결승 탈락은 단기전 국제 대회의 어려움과 다른 나라들의 급속한 수준 향상을 일본에 일깨워주었다. NPB는 시즌 중 국제 경기 확대와 젊은 선수들의 국제 경험 축적을 통해 대표팀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2023년 극적인 우승과 오타니 쇼헤이의 존재감
2023년 제5회 대회는 일본 야구의 새로운 황금시대 개막을 알렸다.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MLB에서 활약하는 오타니 쇼헤이, 다르빗슈 유, 스즈키 세이야 등과 NPB 최정예를 융합하여 최강 팀을 구성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이도류로 대회를 석권했으며,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이닝에 마운드에 올라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극적인 피날레를 연출했다. 이 순간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야구의 매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렸다. 일본은 대회 전 경기 무패로 14년 만에 세 번째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이 NPB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국내 야구 인기가 다시 치솟았고, WBC 기간 TV 시청률은 일관되게 40%를 넘었다. 유소년 야구 참여 감소가 우려되는 시점에서 WBC의 열기는 다음 세대에 야구의 매력을 전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WBC가 NPB에 가져온 구조적 변화와 미래 전망
WBC 개최는 NPB에 다방면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국제 대회를 염두에 둔 선수 육성 의식이 구단 차원에서 높아졌다. 투수 구속 향상과 파워 히팅 중시 같은 트렌드는 WBC에서의 국제 비교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WBC를 통해 MLB 스카우트가 NPB 선수를 직접 관찰할 기회가 늘어나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이적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시즌 전인 3월에 열리는 WBC는 선수 컨디션 관리라는 과제를 NPB에 안겨주고 있다. 주전 선수의 부상 위험과 시즌 초반 퍼포먼스에 대한 영향은 구단과 대표팀 사이에서 항상 논의의 대상이다. 다음 WBC는 2026년 제6회 대회로 예정되어 있으며, 일본의 네 번째 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WBC는 단순한 국제 대회를 넘어 NPB의 발전과 일본 야구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대표 선수 선발과 불참 문제의 변천
WBC 역사에서 대표팀 선발은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6년 제1회 대회에서는 MLB 소속 일본인 선수의 참가에 제약이 있었고, 마쓰이 히데키는 양키스 구단 방침에 따라 출전을 사퇴했다. 2009년에도 일부 MLB 선수가 불참하여 NPB 중심의 편성이 이어졌다. 2013년 이후 MLB 구단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다르빗슈 유와 다나카 마사히로 등 투수진이 대표에 합류하는 흐름이 생겼다. 2023년 대회에서는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한 MLB 주력급이 다수 참가하며 과거의 불참 문제를 극복한 형태가 되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WBC 보험 제도의 정비와 대회 상업적 가치의 상승이 있다. 선수회와 NPB의 교섭도 대회마다 개선되어 보수 분배의 투명화가 참가 의욕 향상에 기여했다.
WBC에서의 투수 기용 전략의 진화
WBC를 통한 일본 대표팀의 투수 기용은 대회마다 전략이 변화했다. 2006년 대회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투하며 에이스 의존형 기용이 두드러졌다. 투구 수 제한 규정 (1차 라운드 65구, 2차 라운드 80구, 결승 라운드 95구) 하에서 선발 투수가 5~6이닝에 강판하는 단기전형 계투가 주류가 되었다. 2009년 대회에서는 이와쿠마 히사시와 다르빗슈 유의 더블 에이스 체제가 기능하여 부담 분산에 성공했다. 2023년 대회에서 구리야마 감독은 매 경기 선발을 완전히 교체하는 로테이션 방식을 채택해 전 투수의 체력을 보존하면서 승리해 나가는 전략을 실행했다. 결승전에서 오타니 쇼헤이가 마무리로 등판한 것도 계획적인 투구 수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단기전에서의 투수 운용 최적해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며, 대회마다 새로운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WBC 라이벌 관계
WBC에서 일본과 한국의 대결은 대회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2006년 대회에서는 예선과 2차 라운드에서 한국에 2패를 당하면서도 준결승에서 승리해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만장한 전개가 펼쳐졌다. 2009년 대회에서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총 5차례 맞대결하며, 결승에서 연장 끝에 일본이 승리하는 양국 실력이 팽팽한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2013년 대회 이후 한국은 1차 라운드 탈락이 이어지면서 일본과의 대결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다. 이 배경에는 한국 프로야구 KBO의 국제 전략 변화와 MLB 도전에 따른 주력 유출이 있다. 한편 대만과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권 국가들이 힘을 키우면서 일본에게 있어 라이벌 구도는 다극화되고 있다. WBC가 4년마다 개최되기에 각국의 세력도는 대회마다 바뀌는 불확실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