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과 프로야구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NPB 선수들은 점점 더 많이 징집되었다. 1944년에는 선수 부족으로 리그 운영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1945 시즌은 완전히 취소되었다. 체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종종 전선으로 보내졌으며, 프로야구 선수라는 신분은 병역 면제 사유가 되지 않았다.
사와무라 에이지 - 세 번의 징집, 27세의 죽음
가장 유명한 희생자는 요미우리 투수 사와무라 에이지이다. 그는 1934년 베이브 루스를 상대로 호투했으며, NPB 원년인 1936 시즌에 방어율 0.81을 기록한 전설적 투수였다. 세 차례 징집(1938년, 1941년, 1943년)되었으며, 첫 번째 복무 중 수류탄 훈련으로 투구 어깨를 다쳤다. 1944년 12월 2일 야쿠시마 앞바다에서 수송선이 격침되어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1947년 창설된 '사와무라상'은 이 요절한 천재 투수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가게우라와 전장에 스러진 선수들
오사카 타이거스의 가게우라 오사무는 1936년 NPB 원년의 투타 겸업 스타(타율 .338/방어율 1.69)였으나 1945년 필리핀에서 전사했다. 나고야군의 이시마루 신이치는 1942년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였으나 1945년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전사했다. 70명 이상의 NPB 선수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미래의 스타 후보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잃어버린 잠재력은 헤아릴 수 없다.
전후 부흥
1945년 8월 종전 후 프로야구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재개되었다. 같은 해 11월 동서 대항전이 열렸고, 1946년에는 리그전이 재개되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선수들이 폐허 속에서 그라운드에 복귀하여 회복 중인 국민에게 오락과 희망을 제공했다. 전사한 선수들의 기억은 야구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 보존되어 NPB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한 장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