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신의 탄생 - 요코하마의 수호신이 되다
사사키 가즈히로는 1990년 도호쿠 후쿠시 대학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처음에는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으나 1995년 마무리로 전향하면서 그의 커리어는 극적으로 변모했다. 전향 첫해 25세이브를 기록하며 이후 요코하마의 절대적 수호신으로 군림했다. 사사키의 시그니처 무기는 타자의 손 앞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포크볼이었다. 약 150km/h의 직구와 같은 궤도에서 급강하하는 포크볼의 조합은 타자에게 거의 풀 수 없는 퍼즐이었다. 사사키의 포크볼은 일반적인 포크볼보다 낙차가 커서 대부분 헛스윙이나 땅볼로 이어졌다. 이 압도적인 투구로 사사키는 '대마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화 '대마신'처럼 9회에 등장하여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모습은 요코하마 팬에게 가장 든든한 광경이었다.
요코하마의 1998년 우승 - 대마신의 전성기
사사키 가즈히로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이었다. 그해 사사키는 45세이브를 기록하며 당시 NPB 신기록을 세웠다. 0.64라는 경이적인 방어율은 그의 투구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1998년 베이스타즈는 곤도 히로시 감독 하에 '머신건 타선'이라 불린 강력한 타선과 사사키를 중심으로 한 투수진의 양 날개로 쾌진격을 이어갔다.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를 4승 2패로 꺾고 38년 만의 일본 제일을 달성했다. 사사키는 시리즈 내내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며 팀 우승에 불가결한 존재였다. 요코하마의 1998년 우승은 사사키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한 명의 구원 투수가 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증명한, 일본 야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마무리 투수의 시즌이었다.
NPB 통산 기록과 마무리 투수 지위의 향상
사사키 가즈히로의 NPB 통산 성적은 229세이브, 방어율 2.41로 당시 NPB 세이브 기록을 크게 경신했다. 사사키가 활약한 1990년대는 마무리 투수의 역할이 확립되어 가는 과도기였다. 에나쓰 유타카가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향하여 성공한 선례는 있었지만, 커리어 초기부터 마무리 전문으로 육성되어 장기간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한 투수로서 사사키는 선구자였다. 사사키의 성공은 NPB에서 마무리 투수의 평가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이전에는 '선발을 못하는 투수의 자리'로 여겨지기 쉬웠던 구원 투수의 지위가, 사사키의 활약으로 '팀 승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격상되었다. 사사키 이후 이와세 히토키, 후지카와 규지, 사파테 등 명 마무리 투수가 잇따라 등장하며 NPB 마무리 투수의 계보가 확립되었다. 사사키는 그 계보의 기점에 위치하는 존재다.
MLB 도전과 일본 구계 복귀
2000년 오프시즌, 사사키 가즈히로는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여 MLB에 도전했다. 이적 첫해 37세이브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수상하여 일본 투수의 실력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포크볼은 MLB에서도 유효한 무기였으며, 메이저리그 강타자들도 고전했다. 그러나 2003년 어깨 부상으로 성적이 하락했고, 2004년 요코하마에 복귀했다. MLB 통산 129세이브, 일미 합산 381세이브는 당시 세계 기록이었다. 요코하마 복귀 후 2005년 은퇴한 사사키는 NPB와 MLB 양쪽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마무리 투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사사키의 MLB 도전은 일본인 마무리 투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이후 우에하라 코지, 다자와 준이치 등 일본인 구원 투수의 MLB 도전에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