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스로 최다승
야마다 히사시는 1969 년 한큐 브레이브스 (현 오릭스) 에 입단해 언더스로 (밑손 던지기) 투수로 18 년간 뛰었다. 통산 성적: 284 승 166 패, 방어율 3.18. 284 승은 NPB 언더스로 투수 최다이며 NPB 전체에서도 역대 9 위 기록이다. 야마다의 언더스로는 지면에서 떠오르는 듯한 직구가 특징으로, 타자들은 '공이 떠오른다'고 표현했다. 싱커와 슬라이더를 조합한 투구는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최다승 3 회 (1976, 1978, 1979), 최우수 방어율 2 회를 수상했다.
한큐 황금시대의 에이스
야마다는 한큐의 1975-1978 년 4 년 연속 리그 우승의 에이스였다. 1976 년 26 승 7 패, 방어율 2.28 의 압도적 성적으로 MVP 를 수상했다. 1977 년에도 20 승을 올리며 한큐 황금시대를 지탱했다. 후쿠모토 유타카, 가토 히데시와 함께한 한큐는 퍼시픽 리그를 지배하는 강호였다. 야마다는 일본시리즈에 5 차례 출전해 큰 무대 경험도 풍부했다. MLB 의 켄트 테쿨브 같은 잠수함 투수는 드물지만, 야마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투수 중 한 명이다.
284 승으로의 길
야마다는 18 년간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다. 10 승 이상을 14 회 기록했으며, 1981 년 200 승, 1985 년 250 승을 달성했다. 1988 년 284 승으로 은퇴했는데, 300 승까지 16 승이 부족했던 것은 본인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그의 장수 비결은 언더스로라는 투법 자체에 있었다. 어깨와 팔꿈치에 부담이 적은 언더스로는 장기간 안정적인 투구를 가능하게 했다. 야마다는 언더스로가 몸에 부담이 적은 투법이기에 18 년간 던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야마다 히사시의 유산
야마다는 은퇴 후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1999-2001) 을 역임했다.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부진했지만, 선수로서의 공적은 NPB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야마다의 유산은 언더스로 투수의 가능성을 최대한 보여준 데 있다. 언더스로는 NPB 에서도 소수파 투법이지만, 그의 284 승은 '밑손 던지기로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와타나베 슌스케, 마키타 가즈히사 등 후대의 언더스로 투수들은 야마다를 목표로 성장한 세대이다. 야마다 히사시는 NPB 언더스로 투수의 최고봉이다.
떠오르는 직구의 비밀
야마다 히사시의 언더스로는 지면에서 불과 수십 센티미터 높이에서 릴리스되어 타자에게 공이 허리에서 가슴으로 떠오르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이는 실제 양력이 아니라 오버핸드 궤적에 익숙한 타자의 시각적 편차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야마다는 이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직구로 유인한 뒤 급격히 가라앉는 싱커로 범타를 양산했다. 일반적으로 강속구 투수는 구속 저하와 함께 쇠퇴하지만, 야마다의 투구 기술은 구속에 의존하지 않아 노화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이러한 내구성이 18년간 통산 284승이라는 장기 축적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배경이다.
퍼시픽리그 황금기를 쌓아올린 기둥
1970년대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에 비해 관중 동원에서 크게 뒤졌지만 경기의 질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야마다 히사시는 그 상징적 존재로서 한큐의 에이스로서 일본시리즈마다 퍼시픽리그의 실력을 전국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 미디어는 센트럴리그 편중이었고 야마다의 업적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야마다는 묵묵히 승리를 쌓아 퍼시픽리그 역사에 에이스의 계보를 새겼다. 후년 퍼시픽리그의 인기 상승은 야마다 시대의 실적 축적이 만든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구사(球史)에 남는 언더스로의 정점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서 언더스로 투수가 주전으로 장기간 군림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야마다 히사시는 그 희소한 성공 사례의 정점에 위치한다. 200승 이상을 기록한 언더스로 투수는 야마다 외에 존재하지 않으며, 최다승 3회라는 훈장도 언더스로로서는 전무후무한 성적이다. 야마다 이후 와타나베 슌스케와 마키타 가즈히사가 같은 투법으로 활약했지만 승수 규모에서 야마다에 비견할 투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야마다의 존재는 비주류 투법으로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증거이며, 후배 언더스로 투수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투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야마다가 구사에 남긴 역할은 헤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