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결번의 현황과 편중
2024년 기준 NPB에는 24개의 영구결번이 제정되어 있지만, 그 분포는 현저히 편중되어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6개(1번 오 사다하루, 3번 나가시마 시게오, 4번 구로사와 도시오, 14번 사와무라 에이지, 16번 가와카미 데쓰하루, 34번 가네다 마사이치)로 가장 많고, 한신 타이거스가 3개를 보유하고 있다. 퍼시픽리그 구단은 영구결번이 적다. 이러한 편중은 구단 역사의 길이뿐 아니라 영구결번에 대한 태도 차이를 반영한다. 요미우리는 뛰어난 선수의 번호를 적극적으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며 전통을 강조한다. 퍼시픽리그 구단은 구단주 교체나 이전을 경험하여 조직 정체성이 단절된 경우가 많아 영구결번 제정에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번호가 영구결번되지 않은 명선수들
영구결번에 걸맞은 성적을 남기고도 번호가 봉인되지 않은 선수가 적지 않다. 이치로(오릭스 51번)는 NPB 통산 타율 .353과 7년 연속 수위타자라는 압도적 성적을 남겼지만, 오릭스는 5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MLB 이적 경위와 긴테쓰 합병을 거치며 조직이 변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오치아이 히로미쓰(주니치 6번)도 삼관왕 3회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주니치에서 영구결번이 되지 않았는데, 여러 구단을 거쳤기에 특정 구단과의 결속이 약한 점이 이유 중 하나다. 영구결번 결정에는 성적뿐 아니라 '특정 구단에 대한 공헌도', '조직과의 관계', '팬의 지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순수한 성적만으로는 영구결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이 제도의 정치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준영구결번이라는 관행
NPB에는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사실상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는 '준영구결번'이라는 관행이 존재한다. 한신의 31번(가게후 마사유키)이나 세이부의 3번(기요하라 가즈히로가 착용)이 그 예다. 준영구결번은 공식 정책이 아닌 암묵적 양해로 운영된다. 따라서 구단 방침 변경이나 새 선수 영입으로 재배정될 수 있으며, 때로는 팬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준영구결번의 존재는 영구결번 기준의 모호함을 반영한다. '공식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쉽게 다른 선수에게 넘기기도 아까운' 미묘한 판단이 이 중간적 관행을 낳고 있다.
등번호를 둘러싼 구단의 전략
등번호는 선수의 정체성인 동시에 구단의 전략적 도구이기도 하다. FA로 영입한 대형 선수에게 젊은 번호나 에이스 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조직의 본기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된다. 반대로 유망한 젊은 선수에게 선배의 번호를 계승시키는 것은 '다음 에이스', '다음 4번 타자'로서의 자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드래프트 1순위 지명 선수에 대한 등번호 부여도 주목을 받는다. 요미우리는 1순위 지명 선수에게 작은 번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높은 기대를 전달하는 미디어 의식적 제스처다. 한편 등번호 변경은 트레이드나 전력외 통보의 전조로 읽힐 수 있어 선수에게 불안의 씨앗이 된다. 등번호는 단순한 식별 수단이 아니라 구단과 선수의 관계, 내부 서열, 팬의 감정이 얽히는 상징적 존재다.
구단 매각·이전과 영구결번의 단절
퍼시픽리그 구단에 영구결번이 적은 요인으로 구단 매각과 이전의 역사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이니치 오리온스에서 시작된 롯데는 도쿄, 센다이, 가와사키, 지바로 연고지를 옮기며 매번 구단 정체성이 희석되었다. 난카이 호크스에서 다이에, 소프트뱅크로 모기업이 바뀐 후쿠오카 구단도 구 모기업 시대 공로자를 새 체제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보인다. 긴테쓰 버팔로즈는 2004년 구단 소멸로 영구결번을 제정할 주체 자체가 사라졌다. 스즈키 게이시의 1번은 버팔로즈 시대에 준영구결번 취급이었으나 합병 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는 그 관행을 이어받지 않았다. 이에 반해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한신, 히로시마 등은 매각 경험이 없는 전통 구단이 많아 구단 역사를 연속적으로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영구결번 제정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등번호 계승과 세대 간 상징성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등번호를 차세대 유망 선수에게 계승시키는 방침을 취하는 구단도 있다. 주니치 드래곤즈의 1번은 오랫동안 팀의 얼굴이 되는 선수가 착용해왔다. 다카기 모리미치에서 후쿠도메 고스케, 교다 요타로 이어지며 번호 자체가 구단 리더를 나타내는 기호로 기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1번은 고쿠보 히로키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 야나기타 유키로 전해져 각 시대의 주포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계승형 운용은 영구결번이 번호를 '동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번호를 '살아있는 전통'으로 활용하는 발상이다. 다만 계승에는 암묵적 압박도 따른다. 위대한 선배의 번호를 짊어진 젊은 선수에게는 팬과 언론의 과도한 기대가 쏟아지며, 번호의 무게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팬 투표와 영구결번 제정의 민주화론
영구결번의 제정권은 구단 프런트에 속하지만, 팬의 목소리가 영향을 준 사례도 존재한다. 한신 타이거스가 2008년 무라야마 미노루의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을 때는 오랜 팬 청원 운동이 배경에 있었다. 무라야마의 은퇴는 1972년이지만 결번화까지 36년이 걸렸으며, 그 기간 동안 팬과 OB회가 구단에 지속적으로 요청한 경위가 있다. 반면 팬의 요망이 강해도 구단이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히로시마의 3번(기누가사 사치오)은 연속 출장 세계기록 보유자로서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되지만, 기누가사 본인이 생전 '후배에게 써달라'고 말한 것이 제정을 막고 있다고 한다. SNS 시대에는 팬 투표로 영구결번 후보를 선출하자는 목소리도 있으나, 감정론이나 인기투표에 흘러갈 위험 때문에 구단 측은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제도의 투명화와 구단 재량권의 균형이 향후 논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