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제국과 야구 지배
요미우리 신문 그룹 회장 와타나베 쓰네오는 수십 년간 NPB에 전례 없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 요미우리의 구단주로서 와타나베는 팀의 미디어 지배력을 활용해 리그 정책을 좌우했다. 요미우리 그룹이 소유한 닛폰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와타나베에게 중계권 협상의 주도권을 부여했고, 사실상 그를 일본 야구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영향력은 요미우리를 훨씬 넘어서, 다른 구단주들은 리그 전체의 결정에서 종종 그의 뜻에 따랐다.
커미셔너 조종
와타나베와 NPB 커미셔너의 관계는 조종적이라는 비판을 널리 받았다. 여러 커미셔너가 와타나베의 뜻과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커미셔너 사무국이 리그 전체가 아닌 요미우리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와타나베가 요미우리에 유리한 단일 리그제를 추진한 2004년 합병 위기는 권력 불균형을 드러냈다. 이후 발생한 선수 파업은 부분적으로 리그 거버넌스에 대한 와타나베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반발이었다.
FA 제도의 악용
와타나베의 지도 아래 요미우리는 라이벌 팀의 FA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했으며, 구단의 재정력과 브랜드 명성을 활용해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였다. 이 전략은 합법적이었지만 경쟁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요미우리는 우에하라 고지, 아베 신노스케 등 소규모 시장 팀의 수많은 스타 선수를 영입했으며, 라이벌 팀이 맞출 수 없는 계약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요미우리가 리그 균형을 해치는「슈퍼팀」으로 운영된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유산과 남은 과제
2004년 구계 재편 문제로 여론의 비판을 받은 와타나베는 같은 해 8월, 아마추어 투수 이치바 야스히로에 대한 뒷돈 문제가 드러나면서 구단주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사임 후에도 요미우리 그룹의 회장·주필로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유지했고, 후임 구단주 다키하나 다쿠오를 비롯한 구단 수뇌 인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타나베가 야구계 전면에서 물러난 뒤 NPB에서는 교류전 도입, 드래프트 제도 개혁, 클라이맥스 시리즈 창설 등 와타나베 시대에는 실현이 어려웠던 개혁이 잇달아 단행되었다. 이런 개혁이 그의 퇴장 없이는 진전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한 인물이 야구계에 미치던 영향의 크기를 말해 준다. 다만 NPB의 거버넌스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모기업의 의향이 구단 운영을 좌우하는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와타나베 쓰네오의 야구계 지배의 역사는 프로 스포츠에서 권력 집중이 조직 전체의 발전을 얼마나 저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교훈이다.
드래프트 제도 개입과 전력 불균형
와타나베 쓰네오는 드래프트 제도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요미우리는 1993년에 도입된 역지명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자금력으로 유력 선수를 확보하는 전략을 펼쳤다. 역지명 제도는 표면적으로 선수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구조였으나, 실제로는 계약금 상적과 입단 조건 우대를 통해 자금력 있는 구단이 유리한 구조였다. 역지명 제도는 2001년 자유획득 쿼터, 2005년 희망 입단 쿼터로 이름을 바꾼 끝에 2007년 폐지되었으나, 그때까지 요미우리는 이 제도를 통해 복수의 유망 선수를 획득하여 타 구단과의 전력 격차를 벌렸다. 드래프트를 둘러싼 와타나베의 자세는 경쟁 균형보다 요미우리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영 철학을 상징했다.
미디어 노출 독점과 정보 통제
와타나베는 미디어 제국을 통해 요미우리에 유리한 보도 환경을 구축했다. 요미우리 신문과 일본TV는 요미우리 경기를 집중 보도한 반면, 타 구단과 퍼시픽리그에 대한 보도는 미미하여 프로야구 보도에서 정보 격차를 만들었다. TV 중계에서는 일본TV의 요미우리 전국 중계가 오랜 기간 골든타임을 독점했고, 퍼시픽리그 경기가 골든타임에 전국 방송되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방송 구조는 요미우리의 팬층 확대에 기여한 반면 타 구단의 전국적 인지도 향상을 저해했다. 비판적 보도를 하는 스포츠 신문이나 기자에 대해서는 취재 제한으로 대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보도의 자유와 프로 스포츠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례도 지적되었다. 미디어와 프로 스포츠의 소유가 동일 자본에 집중되는 폐해는 와타나베 체제하의 NPB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선수회와의 대립과 노사 관계
와타나베의 구계 운영은 선수회와의 격렬한 대립을 수반했다. 2004년 구계 재편 문제에서 긴테쓰와 오릭스의 합병을 계기로 세·퍼 양 리그의 1리그제 이행 구상이 부상했고, 와타나베는 이를 지지했다. 선수회는 1리그제에 의한 구단 수 감소가 선수의 고용 기회를 빼앗는다며 맹렬히 반발했고, 후루타 아쓰야 회장 아래에서 2004년 9월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파업을 실시했다. 이 노사 분쟁은 사회적 주목을 받았으며 여론은 선수회 측을 지지했다. 와타나베가 선수를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지며, 이 말은 팬들의 반감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신규 가입(라쿠텐)을 인정하는 형태로 2리그제가 유지되어 와타나베의 구상은 좌절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은 선수와 팬의 목소리가 구계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