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쿠엔 구장의 일생 - NPB를 지탱한 1937년부터 1987년까지의 50년

1937년 개장 - 일본 최초의 본격적 프로야구 전용 구장

고라쿠엔 구장은 1937년 9월 11일 개장했다. 당시 일본에는 프로야구 팀의 본거지로 사용할 수 있는 본격적 전용 구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한신이 고시엔을 사용한 것 외에는 각 구단이 빌려 쓰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고라쿠엔 스타디움 주식회사가 도쿄 고이시카와 고라쿠엔 정원에 인접한 옛 포병공창 부지에 구장을 건설해 수용 인원 5만 명을 넘는 본격적 시설로 탄생했다. 양 폴 78미터, 중견 110미터의 크기는 당시 국제적으로도 표준이었다. 프로야구가 직업으로 확립되기 위한 물리적 기반으로서 고라쿠엔의 존재는 결정적이었다. 같은 해 요미우리가 고라쿠엔을 준본거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도쿄의 야구 문화가 고라쿠엔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갔다.

전시하의 구장 - 군수와 야구의 동거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고라쿠엔 구장의 운명은 흔들렸다. 1944년에는 통제가 강화돼 직업야구가 중단됐고, 고라쿠엔 구장도 야구 외 용도로 전용됐다. 전시 중에는 군사 시설로 쓰였다고 전해지며, 잔디는 황폐해지고 펜스는 무너졌다. 1945년 도쿄 대공습 때 고라쿠엔 주변도 피해를 입었지만 구장 본체는 다행히 구조적 손상을 면했다. 전후 1945년 11월 23일 고라쿠엔에서 '동서대항전'이 열려, 이것이 일본 야구 부흥의 상징적 순간이 됐다. 잿더미 도쿄에서 야구가 다시 시작된 장소가 고라쿠엔이었다는 사실은, 전후 일본에서의 고라쿠엔 구장의 특별한 의미를 뒷받침한다.

야간 경기 문화의 발상지 - 1948년 조명 설비 설치

고라쿠엔 구장은 일본 야간 경기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948년 8월 17일 요미우리 대 주니치 드래건스 경기에서 일본 최초의 프로야구 야간 경기가 고라쿠엔에서 열렸다. 당시로서는 최신 조명 설비가 설치돼 야간 야구 관전이라는 새로운 오락이 일본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낮 노동을 마친 직장인이 구장으로 달려가 야구를 즐긴다는 스타일은 전후 일본의 여가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고, 프로야구 관중을 크게 끌어올렸다. 고라쿠엔의 야간 경기는 야구 중계 텔레비전 방송과 결합해 야간 가정 오락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의 활약은 이 야간 중계를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

ON포의 성지 - 나가시마 시게오와 오 사다하루의 전설 무대

고라쿠엔 구장이 NPB 사상 가장 빛났던 시기는 나가시마 시게오와 오 사다하루가 활약한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의 약 25년이다. 1959년 6월 25일 쇼와 천황이 관전한 '천람경기'에서 나가시마 시게오가 한신의 무라야마 미노루로부터 친 끝내기 홈런은 고라쿠엔이 무대였다. 오 사다하루의 통산 868홈런 중 가장 많은 수가 고라쿠엔의 홈런 펜스를 넘긴 것이었다. 1977년 9월 3일 오 사다하루가 통산 756홈런으로 행크 애런의 세계 기록을 넘어선 일격도 고라쿠엔에서 태어났다. 고라쿠엔 구장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가 국민적 스포츠로 성장해 가는 과정의 증인이었다. 일본 시리즈의 수많은 명장면, 올스타전의 무대로서도 고라쿠엔은 중심적 역할을 계속했다.

야구 외의 역사 - 프로레슬링·복싱·콘서트

고라쿠엔 구장은 프로야구 전용 구장이 아니라 다목적으로 사용됐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흥행이 정기적으로 열렸고, 리키도잔 대 샤프 형제의 경기는 고라쿠엔 구장에서 치러진 역사적 흥행으로 기억된다. 복싱 세계 타이틀 매치, 스모 지방 장소의 대체 회장, 나아가 일본 대규모 야외 콘서트의 효시가 된 비틀스 1966년 일본 공연도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렸다. 이러한 다목적 이용은 고라쿠엔을 '도쿄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야외 구장으로 비바람에 노출되어 우천 중지 위험과 늘 이웃하면서도, 고라쿠엔은 반세기에 걸쳐 일본 흥행 산업을 지탱했다.

1987년 폐장과 도쿄돔으로의 계승

1987년 11월 8일 고라쿠엔 구장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50년의 임무를 마치고, 부지는 새로 건설된 도쿄돔과 인접 시설로 재개발됐다. 도쿄돔은 1988년 3월 17일 개장해 고라쿠엔의 바통을 이어받아 NPB의 중심지가 됐다. 고라쿠엔 구장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도쿄돔에 계승됐다. 요미우리 본거지라는 전통, 도쿄 야구 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나가시마·오가 새긴 수많은 기록은 도쿄돔에 이어져 살아 있다. 고라쿠엔 구장의 50년은 NPB가 탄생하고 전쟁을 넘어 국민적 스포츠로 성장하는 과정과 완벽히 겹친다.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고라쿠엔 구장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