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압도적인 투구
이가와 게이는 2003년 20승 5패, 방어율 2.80을 기록하며 한신의 18년 만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29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06이닝을 소화했으며, 최다승과 최우수 방어율 2관왕에 더해 사와무라상까지 수상했다. 이가와의 무기는 시속 140km대 후반의 직구와 급격히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그의 체인지업은 결정구로서 헛스윙을 유도했으며, 9이닝당 탈삼진율은 8.5개에 달했다. 2003년 한신은 개막전부터 파죽지세를 이어갔고, 이가와는 그 중심에 있었다. 2000년대 NPB에서 시즌 20승은 매우 드문 기록으로, 이가와의 2003년은 한신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다.
독특한 캐릭터와 투구 스타일
이가와는 NPB에서도 손꼽히는 개성파 투수였다. 마운드 위에서의 무표정한 모습은「포커페이스」라 불렸으며, 호투할 때나 난타당할 때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연습을 싫어한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독자적인 훈련 이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주류였던 장거리 달리기 대신 단거리 스프린트 중심의 훈련을 선호했다. 이는 현대 스포츠 과학과 일맥상통하는 접근법이었다. 그의 좌완 투구 폼은 큰 백스윙이 특징으로, 타자들이 릴리스 포인트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한신에서의 9시즌 동안 86승 64패, 방어율 3.38을 기록했다.
MLB 도전의 좌절
이가와는 2007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입찰 금액은 약 2600만 달러, 계약은 5년 20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이었다. 그러나 MLB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2승 4패, 방어율 6.25로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MLB 타자들의 적응력, 다른 스트라이크 존, 더 단단한 마운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양키스에서의 힘든 5년은 이후 NPB에서 MLB로 도전하는 투수들에게 교훈이 되었으며, MLB에서의 성공에는 NPB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가와에 대한 재평가
MLB에서의 좌절로 이가와의 평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NPB에서의 업적은 재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2003년의 20승 시즌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급의 가치를 지닌다. 이가와는 2012년 오릭스에서 NPB에 복귀하여 2015년까지 현역을 이어갔다. 복귀 후에는 전성기의 구위는 없었지만 경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이가와의 2003년은 한신의 부활을 상징하며, 암흑시대를 끝낸 주역으로서 그의 공헌은 기억되어야 한다. NPB 통산 107승은 좌완 투수로서 충분히 훌륭한 업적이다.
2003년 한신 타선과의 시너지
이가와의 20승은 개인 능력만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다. 2003년 한신 타선에는 가네모토 도모아키, 이마오카 마코토, 아카호시 노리히로 등 강타자가 즐비했고, 팀 타율 .287은 리그 최고였다. 이가와가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타선은 평균 5.8점을 뽑아주며 풍부한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가와는 퀄리티 스타트 비율이 극도로 높아 7회 이후까지 경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 내구력이 폭발적인 타선과 맞물렸다. 선발이 일찍 강판되지 않으면 불펜 부담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구원진 방어율도 리그 상위를 유지했다. 투타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기점으로서 이가와의 존재는 숫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한신 좌완 에이스 계보에서의 위치
한신 타이거스 역사를 돌아보면 좌완 에이스의 계보는 결코 두텁지 않다. 이가와 이전에 20승을 기록한 한신의 좌완 투수는 1964년의 배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가와는 약 40년 만에 이 계보를 갱신한 존재였다. 한신에서는 우완의 에나쓰 유타카와 무라야마 미노루가 전설적인 존재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지만, 좌완으로서 단일 시즌 20승은 구단 역사상 손꼽히는 위업이다. 이가와 퇴단 후 한신은 오랫동안 좌완 에이스 부재에 시달렸다. 노미 아쓰시가 좌완의 기둥을 맡았으나 시즌 20승에 도달한 투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가와의 2003년은 한신 좌완 역사의 정점으로 기록에 새겨져 있다.
포스팅 제도와 이가와가 남긴 과제
이가와의 양키스 이적은 포스팅 제도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당시 포스팅은 비공개 입찰 방식으로 최고액을 제시한 구단이 독점 교섭권을 얻는 구조였다. 양키스는 약 2600만 달러의 입찰액을 지불했지만, 이 금액은 선수 본인의 실력 평가보다 구단 간 경쟁 심리에 기반한 측면이 있었다. 이가와의 MLB 부진 이후 포스팅 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2013년 제도가 개정되어 입찰 상한액이 설정되고 선수가 복수 구단과 교섭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가와의 사례는 NPB 선수의 해외 이적 규정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다나카 마사히로와 다르빗슈 유의 이적 교섭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제도 개혁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이가와의 MLB 도전은 야구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