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쓰네오와 단일 리그 구상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주였던 와타나베 쓰네오는 2004 년 재편 위기 이전부터 단일 리그제로의 전환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와타나베는 퍼시픽 리그 구단들이 경영을 유지할 수 없으며 10 개 구단으로 구성된 단일 리그가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2 리그제 유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일축했다. 이 구상의 배경에는 요미우리 경기의 중계권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요미우리 그룹의 경영적 계산이 있었다. 2 리그제에서는 요미우리가 퍼시픽 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경기에 요미우리가 관여하는 단일 리그제가 중계권 사업에 더 유리했다. 와타나베의 발언은 야구계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퍼시픽 리그 구단 관계자와 팬들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요미우리 신문사 사장 겸 회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다른 구단주들에게 물밑 로비를 진행했다. 단일 리그 구상은 단순한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요미우리 그룹의 경영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된 조직적 움직임이었다.
긴테쓰-오릭스 합병 문제에서의 요미우리의 입장
2004 년 6 월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구상이 표면화되었을 때, 와타나베 쓰네오는 이를 단일 리그제 실현을 위한 디딤돌로서 적극 지지했다. 긴테쓰의 모회사인 긴키 닛폰 철도가 구단 경영에서의 철수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합병 이외의 대안-예를 들어 새로운 매수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지역 밀착형 경영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와타나베는 합병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였으며, 다른 구단주들에게「한 조 더 합병」을 추진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한 조 더」는 다이에 호크스와 롯데 마린즈, 또는 세이부 라이온즈와 다른 구단의 합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퍼시픽 리그를 3 개 구단으로 축소한 후 단일 리그제로 이행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었다. 요미우리는 표면적으로는 각 구단의 경영 판단을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합병 추진의 기수 역할을 담당했다. 긴테쓰 팬들의 구단 존속 운동과 서명 청원에 대해서도 요미우리 측은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선수회와의 대립과 요미우리의 책임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합병과 구단 축소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을 때, 요미우리는 구단주들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와타나베 쓰네오는 선수회 회장 후루타 아쓰야에 대해 선수를 경멸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노동자로서의 선수 권리를 무시하는 상징적인 발언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요미우리는 선수회와의 단체교섭에서 신규 구단 참가나 합병 계획 철회 등 어떠한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침을 고수했다. 경영 측의 교섭 창구인 구단주 회의에서 와타나베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다른 구단주들이 선수회에 양보하는 것을 견제했다. 선수회가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요미우리를 중심으로 한 경영 측의 대화 거부 자세가 있었다. 와타나베의 강경 노선은 결과적으로 여론의 반발을 초래했고, 파업 기간 중 국민의 지지는 선수회 측에 집중되었다. 요미우리의 행태는 구단주가 선수와 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야구계를 사유화하려 한 사례로서 프로야구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재편 이후 요미우리의 변화
2004 년의 파업과 라쿠텐의 신규 참가로 와타나베 쓰네오의 단일 리그 구상은 좌절되었다. 와타나베 본인도 일련의 소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태로 구단주직을 사임했고, 야구계에서의 요미우리의 절대적 영향력은 후퇴했다. 그러나 요미우리의 근본적인 자세가 진정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사임 후에도 와타나베는 요미우리 그룹의 최고 실력자로서 야구계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후임 구단주 인사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편 이후 교류전 도입과 드래프트 제도 개혁 등 NPB 의 구조 개혁이 진전되었지만, 이는 요미우리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미우리의 저항을 극복하며 실현된 측면이 강하다. 2004 년의 위기는 한 구단의 구단주가 리그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NPB 거버넌스상의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요미우리가 재편 위기에서 수행한 역할은 프로야구에서의 권력 집중과 민주적 의사결정 부재라는 구조적 과제를 부각시켰다. 이 교훈이 향후 리그 운영에 얼마나 활용될 것인지는 여전히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