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미 아키노부 - 수위타자에 빛난 한신의 강타 1번 타자

라이온스 시절과 운명을 바꾼 트레이드

마유미 아키노부는 1953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후쿠오카의 야나가와 상업고교와 사회인 야구팀 덴덴규슈를 거쳐 1972년 드래프트 3순위로 지명되어, 1973년부터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1977년부터는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스) 에서 뛰었다. 내야수로 출전하던 그는 1978년 118경기에서 타율 .280, 34도루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이해 처음으로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78년 시즌 뒤 다부치 고이치와의 교환 트레이드 일원으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며 야구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

1983년 수위타자 - 타율 .353의 정점

1983년 마유미는 타율 .353으로 센트럴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같은 해 23홈런, 77타점도 기록하여 정교함과 장타력을 겸비한 타자로서의 완성도를 보여 주었다. 우투우타인 마유미는 군더더기 없는 스윙과 뛰어난 배트 컨트롤로 전 방향에 타구를 뿌리며 상대 배터리가 공략법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해 베스트나인에도 선정되며 명실상부한 센트럴리그 대표 타자가 되었다.

1985년 일본 제일과 강타 1번 타자

1985년 한신 타이거스는 21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를 꺾고 일본 제일에 올랐다. 이해 마유미는 1번 타자로서 타율 .322, 34홈런, 84타점, 108득점을 기록했다. 1번 타자의 한 시즌 34홈런은 파격적인 수치였고, 랜디 바스, 가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노부로 이어지는 강력한 타선의 시발점으로서 출루와 장타 양면에서 득점력을 떠받쳤다. 같은 해 4월 17일 요미우리전에서 바스, 가케후, 오카다가 쏘아 올린 백스크린 3연발이 상징하듯 1985년 한신 타선은 NPB 역사에 남는 파괴력을 자랑했고, 그 맨 앞에 서 있던 선수가 마유미였다. 그는 이해 세 번째 베스트나인에 선정되었다.

통산 292홈런과 200도루 - 공수주를 겸비한 23년

NPB 공식 기록에 따른 마유미의 통산 성적은 23년간 2051경기, 1888안타, 타율 .285, 292홈런, 886타점, 200도루다. 라이온스 시절에는 빠른 발로 팀에 기여했고, 한신 이적 후에는 장타력을 갖춘 1번 타자로 진화했다. 통산 292홈런과 20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점에서 주력과 장타력을 겸비한 그의 독특한 커리어가 드러난다. 1995년 현역에서 은퇴하며 23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감독 시절과 한신에 남긴 유산

2009년 한신 타이거스 감독에 취임한 마유미는 세 시즌 동안 지휘봉을 잡았으나 우승에는 이르지 못하고 2011년 퇴임했다.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선수로서 남긴 발자취는 확고하다. 장타력을 갖춘 1번 타자라는 타선 구성의 선구자가 된 그의 스타일은 후일 NPB의 타순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신 구단사에서 마유미는 후지무라 후미오, 무라야마 미노루와 나란히 거론되는 프랜차이즈 대표 선수 중 한 명이다.

기록으로 돌아보는 마유미 아키노부

기록으로 마유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수위타자 1회 (1983년), 베스트나인 3회 (1978·1983·1985년) 를 수상했고 통산 292홈런을 쌓아 올렸다. 1번 타자에게 장타력을 요구하는 타선 구성은 2000년대 이후 NPB에서 드물지 않게 되었지만, 마유미는 이미 1980년대에 이를 구현한 시대를 앞서간 존재였다. 트레이드를 계기로 재능을 꽃피워 이적한 구단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선수라는 점에서도, 마유미 아키노부의 커리어는 NPB 트레이드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