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코지「미스터 레드 헬멧」- 통산 536 홈런의 히로시마의 보물

미스터 레드 헬멧의 탄생

야마모토 코지는 1969년 드래프트 1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다. 호세이 대학 시절 다부치 고이치와 함께「1968년의 꽃」으로 불린 인재였다. 처음에는 유격수였으나 타격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1975년 히로시마가 구단 창설 이래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을 때, 야마모토는 타율 .319, 30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이 우승을 계기로「미스터 레드 헬멧」이라는 별명이 확립되었다. 히로시마는 시민 구단으로서 자금력이 부족했지만, 야마모토와 같은 자체 육성 스타의 존재가 팀의 구심력이 되었다.

통산 536 홈런

야마모토는 20시즌에 걸쳐 통산 536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NPB 역대 5위 기록이며, 우타자로서는 오 사다하루와 노무라 가쓰야에 이은 수치이다. 홈런왕 4회 (1978, 1980, 1981, 1983), 타점왕 3회, MVP 3회를 수상했다. 그의 타격 특징은 호쾌한 풀스윙과 전방위 타격 기술의 양립에 있었다. 고시엔 구장에서 해풍에 고전하는 우타자가 많은 가운데, 야마모토는 역방향으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 통산 타율 .290과 1,475타점은 장타력과 안정성을 겸비한 타자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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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누가사와의 황금 콤비

야마모토 코지와 기누가사 사치오의 3·4번 콤비는 1970~80년대 NPB를 대표하는 클린업이었다. 두 사람 합산 통산 1,040홈런은 같은 팀 콤비로서 NPB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히로시마의 황금시대 - 1975년 첫 우승, 1979-80년 연패, 1984년 우승 - 는 이 두 사람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 야마모토가 우타 장거리포, 기누가사가 좌타 철인 타자라는 조합은 투수에게 가장 까다로운 클린업이었다. MLB의 맨틀과 매리스처럼, 두 사람의 존재가 서로의 타격을 끌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감독 시대와 유산

야마모토는 은퇴 후 히로시마 감독을 두 차례 (1989-93, 2001-05) 역임했으며, 2013년 WBC 일본 대표팀 감독도 맡았다. 감독으로서 리그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젊은 선수 육성에 정평이 있어 마에다 도모노리와 오가타 고이치 등의 선수를 키워냈다. 히로시마는 그의 등번호 8번을 기누가사의 3번과 함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여 구단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2016년 히로시마가 25년 만에 우승했을 때, 야마모토는 시구식에 등장하여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야마모토 코지는 히로시마 카프 그 자체이며, 시민 구단의 자부심이다.

풀스윙의 미학

야마모토 고지의 타격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타협 없는 풀스윙이다. 당시 타자들 사이에서는 확실성을 중시해 콤팩트하게 치는 경향도 있었지만, 야마모토는 항상 홈런을 노릴 수 있는 강력한 스윙을 관철했다. 그러면서도 통산 타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은 뛰어난 배트 컨트롤 덕분이다. 넓은 각도로 타구를 날리는 기술은 바깥쪽 공을 라이트 방향 홈런으로 만드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풀스윙은 헛스윙 위험을 수반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위험을 받아들이면서 결과를 냈다. 이러한 자세는 이후 히로시마 장거리포 타자들의 본보기가 되어 구단의 타격 철학에 깊이 뿌리내렸다.

시민 구단의 상징으로서의 존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특정 모기업이 없는 시민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자금력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프리에이전트로 주력 선수가 유출되기 쉬우며, 항상 전력 교체에 노출되어 왔다. 그 속에서 야마모토 고지는 입단부터 은퇴까지 20년간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고 히로시마의 4번 타자를 맡았다. 이러한 일관성이 시민 구단 카프에 얼마나 큰 정신적 기둥이 되었는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지방 도시의 작은 구단이 전국구 강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마모토라는 부동의 기수가 있었다. 야마모토의 충성심과 실적의 조합은 카프 팬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히로시마 타선의 계보와 야마모토의 영향

야마모토 고지가 구축한 '풀스윙으로 홈런을 양산하면서도 높은 타율을 유지하는' 이상형은 히로시마 타선의 전통으로 후세에 계승되었다. 마에다 토모노리는 야마모토와 마찬가지로 기술과 장타력을 겸비한 타자로 평가받으며, 야마모토의 뒤를 좇은 대표적 선수이다. 또한 히로시마는 자체 육성을 중시하는 구단 방침이 있어, 야마모토의 존재가 '이 팀에서 4번을 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규범을 명확히 정립했다. 외부에서 대포를 영입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키우는 히로시마의 자세는 야마모토가 20년간 보여준 모범에 의해 지탱된다. 구단의 역사가 한 선수의 철학과 깊이 결부된 희귀한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