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쓰네미의 불꽃 스토퍼 - 32세에 스러진 히로시마의 수호신

불꽃 스토퍼의 탄생

1981년 히로시마에 1순위로 지명된 쓰다는 1986년 마무리로 전향했고, 1980년대 NPB에서 드물었던 150km/h 이상의 강속구가 그의 상징적 무기가 되었다.「불꽃 스토퍼」라는 별명은 그의 구속과 마운드에서 보여준 불타는 투혼을 동시에 담아낸 것이었다.

카프의 수호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히로시마의 마무리를 맡은 쓰다는 1986년 우승 시즌에 20세이브를 기록했다. 결정적 순간에 직구로 타자에게 정면 승부를 거는, 칠 수 있으면 쳐보라는 그의 투구 철학이 공격적인 스타일을 정의했다. 통산 90세이브는 당시로서는 인상적인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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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암과의 사투

1991년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쓰다는 수술과 재활을 통해 마운드 복귀를 위해 싸웠다. 그의 의지와 동료·팬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악화되었다. 1993년 7월 20일, 쓰다는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 비극은 야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유산

286경기 출장, 49승 41패, 90세이브, 방어율 3.31이라는 기록은 그의 영향력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히로시마는 그의 등번호 14번을 준영구결번으로 대우하고 있다. 직구 하나로 승부하는 강렬한 스타일과 불치병 앞에서 보여준 용기는 쓰다의 짧은 선수 생활을 NPB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중 하나로 만들었다.

직구에 대한 집념과 투구술

쓰다 쓰네미의 투구 철학은 '직구로 승부한다'는 한 점에 집약되었다. 포크볼과 슬라이더도 던졌지만 결정적 장면에서는 반드시 스트레이트를 선택했다. 당시 타자들은 '쓰다의 직구는 알면서도 못 친다'고 입을 모았다. 구속뿐 아니라 릴리스 포인트의 가까움과 회전 질이 타자의 체감 속도를 실제 구속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특히 몰아세운 후 높은 직구는 쓰다의 대명사로, 헛스윙 삼진을 양산했다. 1989년에는 58경기에 등판해 25세이브를 기록, 이 해가 커리어 하이가 되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투구는 신체 부담이 컸지만 쓰다는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전력 투구를 관철했다.

1986년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1986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쓰다는 그 중심에 있었다. 시즌 20세이브에 7승을 더해, 당시 마무리로서는 이례적인 승수를 쌓았다. 세이브 기회뿐 아니라 동점이나 근소한 리드 상황에서도 투입되어 연투를 마다하지 않는 기용에 응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즈와 대결해 히로시마가 3승 4패로 패했지만, 쓰다는 시리즈 중 4경기에 등판해 존재감을 보였다. 이 해 히로시마에는 야마모토 고지, 기누가사 사치오 등 베테랑이 진용을 지탱했고 기타베푸 가쿠가 18승을 기록했다. 쓰다의 수호신 활약이 없었다면 우승 다툼은 다른 결말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등번호 14와 히로시마에 새겨진 기억

쓰다 쓰네미의 등번호 14는 히로시마 카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구단은 쓰다의 사후 이 번호를 준영구결번으로 취급하며 다른 선수에게 쉽게 넘기지 않는 방침을 취했다. 히로시마 시민구장 (1957-2008년 사용) 시대부터 14번은 구단 역사를 상징하는 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마쓰다 스타디움 내에는 쓰다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기일인 7월 20일에는 추모 행사가 열리는 해도 있다. 쓰다와 동시대에 활약한 오노 유타카는 '쓰다의 몫까지 던지겠다'고 다짐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무리로서 히로시마를 지탱했다. 32년의 짧은 생애에서 보여준 전력 투구의 자세는 세대를 넘어 히로시마 투수들에게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