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텐 이글스의 탄생 - 신규 구단의 도전

구계 재편의 산물 - 신규 가맹의 경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2004년 NPB 구계 재편 위기에서 탄생한 구단이다.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으로 퍼시픽리그가 5개 구단으로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IT 기업 라쿠텐과 라이브도어가 신규 가맹을 신청했다. 심사 결과 라쿠텐이 새 구단의 구단주로 선정되었고, 센다이가 연고지로 결정되었다. 도호쿠 지방에 프로야구 구단이 탄생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새 구단의 출범은 혹독했다. 분배 드래프트를 통해 기존 구단에서 획득한 선수들은 주로 각 팀이 방출 대상으로 여긴 전력이었고, 압도적으로 불리한 출발점이었다. 구단 설립 후 불과 수개월 만에 개막을 맞이하는 전례 없는 일정도 준비 부족을 가중시켰다.

38승 97패 - NPB 역사상 최약체 시즌

라쿠텐 이글스의 2005년 첫 시즌은 NPB 역사상 가장 힘든 시즌 중 하나가 되었다. 다오 야스시 감독 하에 개막전은 승리했지만, 이후 팀 전력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 38승 97패 1무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승률 .281은 근대 NPB 기록 중 최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시즌에도 빛나는 점은 있었다. 팀의 승패와 관계없이 팬들은 센다이의 미야기 구장 (현 라쿠텐 모바일 파크 미야기)을 가득 채웠다. 도호쿠 최초의 프로야구 구단을 응원한다는 사명감과 약한 팀을 지지하는 연대감이 센다이 팬들을 구장으로 이끌었다. 이 첫해의 경험은 라쿠텐 이글스 정체성의 핵심인 '역경을 힘으로 바꾸는' 정신을 형성했다. 최약체에서 출발했기에 이후의 성장이 더욱 극적으로 빛났다.

노무라의 재건과 다나카 마사히로의 부상

2006년 노무라 가쓰야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이글스는 꾸준히 전력을 강화해 나갔다. 야쿠르트 시절과 마찬가지로 노무라는 ID 야구를 도입하여 제한된 전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을 펼쳤다. 특히 젊은 투수 육성에 주력하여 다나카 마사히로, 이와쿠마 히사시, 나가이 레이를 중심으로 투수진을 구축했다. 다나카의 성장은 특히 눈부셔 2007년 신인으로서 11승을 기록하며 팀의 약진에 기여했다. 노무라의 4년간 이글스는 점차 순위를 끌어올려 2009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노무라의 공헌은 단순히 승수를 늘린 것에 그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생각하는 야구를 심어주어 약팀이 강팀과 맞설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노무라가 떠난 후에도 이 철학은 이글스의 DNA로 계승되었다.

2013년 일본 제일 - 도호쿠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

2013년, 라쿠텐 이글스는 구단 창설 9년 만에 첫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다나카 마사히로는 이 해 경이로운 성적을 남기며 정규시즌 24승 0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 하에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하나가 되어 싸워 요미우리를 4승 3패로 꺾었다. 결정적인 7차전에서 전날 완투한 다나카가 9회에 구원 등판하여 우승 투수가 되었다. 이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선 의미를 지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도호쿠 지방에게 라쿠텐의 일본 제일은 부흥의 상징이었다. 포수 시마 모토히로가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스피치가 상징하듯, 라쿠텐 이글스는 도호쿠의 희망 그 자체였다. 최약체에서 출발하여 지진의 고난을 견디고 정상에 오르다. 라쿠텐 이글스의 역사는 NPB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