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회 결성 전야 - 선수 권리가 없던 시대
NPB 초창기에 선수들은 구단에 대해 극히 약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보류 조항으로 인해 선수들은 구단의 허가 없이 이적할 수 없었고, 연봉 협상에서도 구단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계약 갱신 시 제시된 금액에 불만이 있어도 선수들에게는 실질적인 협상력이 없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부 선수들이 대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구단주들은 선수들의 단결을 경계했으며, 목소리를 높인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야구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상 구단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지배적이었다.
일본프로야구선수회의 설립과 법적 지위 확립
1985년, 일본프로야구선수회는 노동조합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 인정은 선수가 단순한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선수회 설립에 이르기까지 당시 주전 선수인 나카하타 기요시와 하라 다쓰노리 등이 중심이 되어 구단주와의 끈질긴 협상을 이끌었다. 노동조합 인정을 받음으로써 선수회는 단체교섭권을 획득하여 최저연봉 보장, 계약 투명성, 선수 복지에 관해 구단 측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인정은 구단주에게 큰 양보였으며, 이후에도 선수회와 경영진 사이의 긴장 관계는 계속되었다.
쟁취한 권리와 제도 개혁
선수회의 활동은 NPB의 제도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1993년 FA(자유계약선수) 제도의 도입은 선수회의 오랜 요구가 결실을 맺은 성과이다. FA 제도로 일정 연수를 채운 선수가 자유롭게 이적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선수 유동성과 연봉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연봉 조정 제도의 도입, 최저연봉 인상, 은퇴 후 연금 제도 정비 등은 선수회의 교섭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 나아가 대리인 제도의 도입으로 선수들이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계약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 개혁은 NPB를 현대적인 프로 스포츠 리그로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선수회의 존재는 구단주의 일방적 결정에 대한 중요한 견제 기능을 하고 있다.
2004년 파업과 선수회의 전환점
2004년 구계 재편 문제는 선수회 역사상 최대의 전환점이 되었다. 긴테쓰 버팔로즈와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합병 구상에서 비롯된 이 문제는 1리그제 전환을 노리는 일부 구단주와 12구단 체제 유지를 요구하는 선수회의 대립으로 발전했다. 구단주와의 협상이 결렬된 후, 선수회 회장 후루타 아쓰야는 NPB 사상 최초의 파업을 단행했다. 이틀간의 파업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라쿠텐 이글스의 신규 참가라는 형태로 12구단 체제가 유지되었다. 이 파업은 선수회가 단순한 대우 개선 조직이 아니라 프로야구의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후루타의 단호한 자세는 선수회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