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테쓰 스왈로즈의 고고한 에이스
가네다 마사이치는 1950년 17세의 나이로 고쿠테쓰 스왈로즈에 입단했다. 당시 고쿠테쓰는 만년 하위권의 약체 구단이었으며, 가네다는 그 속에서 고군분투를 이어갔다. 약한 팀의 에이스였기에 승수를 쌓으려면 스스로 완투하고 타선의 지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년간의 현역 생활에서 가네다는 365완투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대 투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다. 1958년에는 나가시마 시게오의 데뷔전에서 4타석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강한 팔의 위력을 과시했다. 왼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직구는 당시 타자들을 압도했으며, 통산 4,490 탈삼진은 NPB 역대 최다 기록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400승으로의 여정과 시대적 배경
가네다의 400승은 현대 야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달성된 기록이다. 당시 선발 투수는 3~4일 간격으로 등판하는 것이 당연했고, 시즌 40경기 이상 선발하는 것도 드물지 않았다. 가네다는 1951년에 30승, 1952년에 26승을 올리는 등 20대 초반부터 경이적인 속도로 승수를 쌓아갔다. 그러나 약체 팀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298패라는 많은 패전도 기록했다. 승률 .574는 결코 압도적이지 않지만, 이는 가네다의 부족함이 아닌 팀 전력의 한계를 반영한 것이다. 400승 298패라는 숫자는 한 명의 투수가 팀의 승패를 짊어졌던 시대의 상징이다.
요미우리 이적과 400승 달성
1965년, 가네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약체 구단에서 상승 강호로의 이적은 그에게 오랜 숙원이었다. 요미우리 이적 후 1969년 10월 10일 주니치전에서 통산 400승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NPB 역사상 유일한 도달자이며,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현대 투수는 연간 약 25경기 선발에 그치며, 6일 간격 로테이션이 표준이 되었다. 설령 매년 15승을 올린다 해도 400승에는 27년이 걸리는 계산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네다의 400승은 투수의 혹사가 용인되던 시대였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말 그대로 불멸의 기록이다.
가네다 마사이치의 인물상과 야구계에 미친 영향
가네다 마사이치는 호쾌한 성격과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했으며,「가네얀」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현역 은퇴 후에는 롯데 오리온즈의 감독을 맡아 1974년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해설자로서도 오랫동안 활약했으며, 솔직한 해설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가네다의 공적은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 약체 구단의 에이스로서 묵묵히 던지며 이어간 자세는 프로페셔널리즘의 본보기로서 후세 투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투수의 과도한 등판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인식되고 있는 현대에, 가네다 시대의 투수 기용법을 되돌아보는 것은 선수의 건강 관리와 경기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