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역사 - PL학원의 고시엔 지배
PL학원은 오사카부 톤다바야시시에 위치한 퍼펙트 리버티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로, 야구부는 1956년에 창부되었다. 1978년 봄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후 고시엔의 상수가 되었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10년간 춘하 합계 6회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며 고교 야구계의 절대 왕자로 군림했다. 1983년 여름, 1학년 쿠와타 마스미와 기요하라 카즈히로가 "KK 콤비"로 고시엔을 석권하며 사회 현상을 일으켰다. 기요하라는 고시엔 통산 13홈런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고, 쿠와타는 1학년임에도 에이스로 투구했다. 1985년 KK 콤비의 마지막 해에 춘하 연패를 달성하며 PL학원의 명성은 정점에 달했다. 타츠나미 카즈요시, 카타오카 아츠시, 미야모토 신야, 마에다 켄타, 나카무라 타케야 등 수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했으며, PL학원 출신 프로야구 선수는 통산 80명을 넘는다. 고교 야구계 최강의 명문으로서 그 이름은 전국에 울려 퍼졌다. PL학원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프로야구계에 미친 영향의 크기였다. 1985년 드래프트에서 쿠와타가 요미우리에 1위 지명, 기요하라가 세이부에 1위 지명되었고, 두 사람의 진로를 둘러싼 보도가 수 주간 TV와 신문을 장악했다. 기요하라가 요미우리 입단을 열망했음에도 세이부에 지명되었을 때의 눈물은 일본 전국 시청자의 기억에 새겨져 있다. PL학원 졸업생들은 각 프로 구단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NPB를 지탱하는 대규모 인재 파이프라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빛나는 업적 뒤에는 팀 내에서 상태화된 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반복된 폭력 사건
PL학원 야구부에서는 상급생의 하급생에 대한 폭력이 수년간 상태화되어 있었다. 구타, 발길질, 강제 무릎 꿇기, 심야 폭행 등 그 실태는 참혹했다. 1학년생은 상급생의 개인적 시중을 강요받았다 - 빨래, 식사 준비, 마사지 등. 이를 소홀히 하거나 상급생의 기분을 거스르면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폭력은 "단련"과 "전통"으로 정당화되어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숙사 방은 학년별로 배정되었고, 상급생이 심야에 하급생 방에 침입해 폭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가 부모에게 상담하려 해도 "팀 동료를 배신할 거냐"는 압력에 직면해 침묵을 강요당했다. 2001년 부원 간 폭력 사건이 발각되어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부터 대외 시합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조직적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이후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분 해제 후에도 폭력 체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2009년 다시 폭력 사건이 발각되었다. 2009년 사건에서는 상급생이 하급생의 얼굴을 구타해 고막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학교 측은 처음에 사건을 공표하지 않았고, 외부의 지적으로 비로소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은폐 체질이야말로 폭력의 온상을 유지시킨 최대 요인이었다. 2013년에도 폭력 사건이 잇따라 발각되어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2013년 사건에서는 복수의 상급생이 조직적으로 하급생을 폭행했으며 피해자는 10명 이상에 달했다. 폭행 수법은 맨손 구타를 넘어 배트 손잡이로 때리기, 무릎 꿇린 상태에서 머리를 밟기 등으로 악질화되었다. 6개월간 대외 시합 금지 처분이 내려졌지만, 이 시점에서 처분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했다.
신입부원 제로와 사실상의 폐부
반복되는 폭력 사건과 처분으로 PL학원 야구부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졌다. 한때 전국에서 유망한 중학생이 몰려들던 명문이 이제는 폭력의 온상으로 보도되었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입부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고, 중학교 지도자들도 제자를 PL학원에 보내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유망한 중학생들은 오사카 토인, 리세이샤, 호토쿠 학원 등 다른 강호를 선택했고, PL학원 입부자는 해마다 감소했다. 2014년 이후 신입부원 수가 급감하여 팀 편성조차 어려워졌다. 2015년에는 부원 수가 10명 미만으로 떨어져 공식전 출전이 위태로워졌다. 오사카부 대회에서는 한때의 명문이 다른 동아리 학생을 빌려 출전하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신입부원이 제로가 되었다. 인원 부족으로 공식전 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PL학원 야구부는 사실상 폐부 상태에 빠졌다. 고시엔 춘하 합계 7회 우승, 80명 이상의 프로야구 선수를 배출한 명문이 폭력 문제로 소멸한다는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PL학원 자체도 2019년에 학생 모집을 중단하며 학교로서의 역사에도 막을 내렸다. 교단의 신자 수 감소에 따른 경영난도 배경에 있었지만, 야구부의 불상사가 학교 전체의 브랜드를 훼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때 고시엔 관중석을 가득 채웠던 PL학원 응원단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OB들의 증언 - 폐쇄 공간의 폭력 구조
PL학원 야구부 OB들은 은퇴 후 팀 내 폭력의 실태를 증언했다. 기숙사 생활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상급생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거역하면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는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했으며,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된 시기도 있었다. 이 폐쇄성이 폭력의 은폐를 용이하게 하고 피해자가 외부에 도움을 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지도자인 감독과 코치도 폭력을 묵인 또는 용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력은 "상급생이 하급생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고, 지도자들은 이 구조를 이용해 팀 규율을 유지했다. 기요하라 카즈히로 본인도 자서전에서 PL학원 시절의 가혹한 상하관계에 대해 "지옥 같은 나날"이라고 표현했다. 기요하라는 1학년 때 상급생으로부터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음을 고백했으며,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고 밝혔다. 쿠와타 마스미도 PL학원의 위계질서의 가혹함에 대해 언급하며 "그 환경은 비정상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쿠와타는 후년 지도자로서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지도법을 제창하며 자신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활용했다. 이 폭력의 연쇄에는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가 되는 구조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다. 1학년 때 폭력을 당한 선수가 2학년, 3학년이 되면 하급생에게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나도 당했으니까"라는 왜곡된 정당화가 폭력의 재생산을 지탱했다. 심리학적으로 이 현상은 "피학대자의 가해자화"로 알려져 있으며, 폐쇄적 집단 내에서 특히 발생하기 쉽다.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식 개혁뿐만 아니라 기숙사 제도와 상하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PL학원에서는 교단의 권위와 야구부의 전통이 결합하여 외부 개입을 거부하는 견고한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교 야구의 폭력 문제 - PL학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PL학원의 붕괴는 고교 야구계 전체에 만연한 폭력 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국의 강호에서 유사한 폭력 사건이 보고되고 있으며, 일본고교야구연맹은 매년 복수의 학교에 처분을 내리고 있다. 연맹 통계에 따르면 폭력과 괴롭힘을 이유로 한 처분 건수는 연간 10~20건 수준이지만, 이는 발각된 사안만이며 실제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오사카 시립 사쿠라노미야 고교 농구부에서 체벌을 받은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학교 스포츠의 폭력 문제가 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후 문부과학성이 실시한 전국 조사에서 체벌 보고 건수가 전년의 약 6배로 급증하여 오랫동안 은폐되어 온 실태가 드러났다. 기숙사 생활의 폐쇄성, 승리지상주의, 상하관계의 절대시라는 구조적 요인이 폭력을 낳는 토양이 되고 있다. 특히 전원 기숙사제 강호에서는 선수가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위계관계의 역학이 생활의 모든 면에 침투한다. 식사 순서, 목욕 순서, 취침 시간에 이르기까지 상급생이 지배하며, 이 지배 구조가 폭력으로 에스컬레이트하기 쉽다. 근년 폭력 근절을 향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 연맹은 2013년 이후 전국에서 폭력 방지 연수회를 개최하고, 익명 상담 창구를 설치하며, 외부 제3자에 의한 정기 조사도 도입되고 있다. 오사카 토인의 니시타니 코이치 감독처럼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대화를 중시하는 지도법으로 결과를 내는 지도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엄격한 지도"와 "폭력"의 경계선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도자와 학부모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엄격함은 필요하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으며, 폭력의 완전한 근절에는 사회 전체의 의식 변혁이 불가결하다. PL학원의 사례는 명문의 간판이 있어도 폭력을 방치하면 조직은 붕괴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고교 야구계 전체가 이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선수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